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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에세이

한 원로의 기고글에 대해......

by Muzik者 2015. 10. 2.

(한국음악계에서 자리잡고 일하려거든 좀 더 신중하게 말하고 행동하시라고 걱정하고 조언해 주시는 분들 덕에 요즘 대체로 자제하고 있습니다만, 이 삐딱한 천성을 어찌 못해 가끔 하고 픈 말은 해야겠습니다.)

 

70이 다 되신 음악계 원로 C선생님께서 지난 6동아일보에 기고하신 글이 지인의 FB-타임라인에 링크 되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해당 글을 쓰신 분은 현재 수도권의 명문 사학 C대학교 예술대학의 명예교수이신데 평소 저도 그분의 지난 업적을 높게 평가하며 매우 존경하던 분입니다. 예전에 그분의 저서를 공부한 적도 있고 여러 글들을 읽어보았기에 그 분의 음악과 생각을 어렴풋이 나마 이해합니다. 6월에 기고하신 글도 대체로 타당한 주장이고 공감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본인 세대들의 과오로 인해 쌓여진 문제들을 마치 현 세대들이 만들고 있는 듯이 나무라는 모양새가 불만스럽기도 하여 이 글을 써 봅니다.


(궁중음악의 재연모습. 국립국악원)

 

한국음악(전통음악/국악)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한국음대의 커리큘럼 구조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인데요 제목이 몰매 맞을 각오로 쓰는 음악대학 이야기입니다. 대체로 공감되는 이야기이고 실제 존재하는 문제들이죠. 그래서 그러한 문제제기는 너무나도 타당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들어요.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국내 음악계에서 도대체 누가 명문음대의 명예교수인 그 원로를 몰매 할 수 있을까요? 그분이 과연 을(乙)의 위치에 있을까요? 저 같은 젊은 작가/학자들은 되려 그분께 잘 보이려 애쓰는 데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야 말로 잘 보여야 될 원로들께 미움 받을 거 각오 하고 이런 글을 씁니다!

 

그분이 문제라고 지적한 한국음대의 커리큘럼을 운영해온 장본인들이 대체 누구인가요? 명문사학에서 오랫동안 교수를 하신 본인은 아니라고 이야기하시는 걸 까요? 물론 C 교수는 본인이 지적하신 이 문제를 개선하시려 오랫동안 노력하신 분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존경하고 있고요. 또 관련하여 C 선생님 말고도 오랫동안 비슷한 문제제기를 하며 각자의 대안을 주장하던 분들이 원로 및 중견그룹에서 제법 많이 있으며 그 분들을 존경하며 그 업적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런 문제들에 대해 자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양, 자신들의 과오와 부족함에 대한 고백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장들은 이미 60~70년대에 고() 나운영(1922~1993)선생께서 주장하고 실천하던 것 아닌가요? 그 사이 2015년이 되기까지 지금 지적하고 계신 문제의 음대 커리큘럼을 만들고 운영해온 건 누구인가요? 우리 후배들입니까? 이런 문제제기를 현재 대학의 운영을 바꾸어갈 삼사십대가 교수가 했다면 두말 않고 수긍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오랫동안 대학에서 과거의 커리큘럼을 이끌었던 70대의 원로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니 좀 반발심이 생기네요. 더구나 그분이 직접 길러낸 제자들 상당수가 교수가 되어 현재의 커리큘럼을 이끌고 있지 않습니까?

 

모든 역사는 후()세대가 전()세대를 오롯이 평가할 수 있을 때 진보하는 것이지, 앞 세대가 자신들의 과오는 외면한 체 본인들의 업적과 생각을 부각해 후세대에 가르치려 들면 왜곡되는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많은 선생님들이 주장하며 그 동안 가르쳐 왔던 국악의 내용들이 알고 보니 심대하게 왜곡되어 있던 것이 숨겨진 진실이었고 중요한 연구과제들은 외면되어 부실하게 교육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 아닌가요? 또한 국악계 원로들은 자신들이 그 동안 해온 연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이유로 훌륭한 연구성과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자들을 배척해 오지 않았나요?

 

무수한 예를 들 수 있습니다. 한국의 음대에서 한국음악사나 전통음악을 가르치고 공부하는 것 매우 중요 합니다. 그런 선생님들의 글의 영향을 받아 저도 공부해 보려 무던히 노력하던 때가 있었죠. 게다가 서양음악 전공자로서 외국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국악에 관심 갖고 공부하니 여러 국악인들이 따뜻한 격려와 관심을 주시고 많은 가르침을 주셨죠. 하지만 제대로 된 교제의 부재(不在)는 둘 째 치더라도, 국악계 스스로 왜곡된 음악사를 바로 잡지 않으니 왜곡된 자료들로 인해 국악은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미궁으로 빠집니다. 그렇게 공부하면서 품게 된 의문점과 의심스런 부분들을 질문해도 똑 부러지게 대답해주는 국악인이 별로 없어요. 그에 대해 연구한 사람도 많지 않고요.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된 적도 없는 가락들을 조선궁중음악이라 가르치면서 뻔히 고()악보에 기록된 가락들의 재연 연주를 제대로 시도한 적이 몇번이나 있나요? 14세기인 1572 (선조 5) 관보로 편찬된 거문고 악보인 금합자보(琴合字譜)라는 고()악보가 버젓이 있지만 이것을 국립국악원이나 대학 연구기관에서 제대로 재연 연주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지요? 조선 초기 악보의 323323 대강 구조에서 각 정간을 한 박으로 볼 것이냐 32를 같은 음가로 볼 것이냐의 해석문제로 의견이 분분해 계속 방치하고 있지 않습니까? 의견이 분분하면 둘 다 재연해 보고 비교 연구하면 될 일 아닌가요? 서구 음악 학자들 이였다면 진작에 그렇게 했겠죠. 이런 문제를 왜 국악계 스스로 바로 잡지 못해 공부하다 답답해진 서양음악 전공자가 나서서 연구하게 만들죠?


축구선수 기성용입니까? (답답하면 너희들이 가서 뛰던지…)


어디 금합자보 뿐인가요? 15세기 편찬된 양금신보, 16세기 대악후보, 17세기 신증가령(신증금보), 18세기 한금심보와 유예지 19세기 삼죽금보 등 이렇게 남아있는 고악보가 많은데 여기에 기록된 악곡의 가락은 대체 어디서 들어볼 수 있으며 해당 악곡들이 오늘날 국악원에서 정악(正樂) 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곡들의 가락과 어떻게 다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학자나 국악인이 대체 몇이나 되죠? 그리고 어떤 변천과정으로 오늘날의 전수되는 가락이 나왔는지 서양음악사나 서양음악 이론들처럼 체계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교육자가 몇 명이나 있나요?

 

그렇게 비교대상으로 삼으시는 서양음악은 12세기 그레고리안 성가도 원전연주로 재연합니다. 16세기 교회 음악양식과 르네상스 시기의 음악들도 대위법이라는 체계적 이론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바흐를 비롯한 17~18세기 초의 음악양식도 체계적 이론으로 정리되었죠. 18세기 빈고전파 이후의의 조성음악들도 화성법을 비롯한 각종 이론이 정립되었죠.

 

국악은요? 각 시대별 음악양식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있나요? 15세기 가락을 연주하는 사람 있어요? 16세기 연주된 가락이나 장단에 대해 교육하는 사람 있나요? 18세기 가락적 특징과 장단에 대해 이론적 정립한 사람 있어요? 당장 19세기 초에 편찬된 악보의 가락도 연주 잘 안 하고 이론정립도 안 했잖아요?! 지금 하는 거 대부분이 정악은 20세기 일제의 조선총독부 산하 관변단체인 이왕직아악부가 하던 음악을 기초로 하고 있고, 민속악은 민요와 함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행한 판소리와 산조, 시나위 등이 대부분 아닙니까?

 

그럼 그 음악들이 어떤 역사를 거쳐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 가락들이 되었는지 과거의 가락을 들려주며 서양음악사나 이론처럼 일목요연하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 있나요? 당장 연구와 복원도 제대로 안되어 있는 걸 가지고 대체 뭘 가르치고 뭘 배워야 하지요? 지금 대학에서 그나마 가르친다는 국악이론과 한국음악사그 내용이 얼마나 부실 합니까? 위에 쓴 고 악보의 악곡들에 대한 연구와 이론정립이라도 해놓고 가르치라 마라 해야지 부실하고 왜곡된 내용 가르친들 뭐 배울게 있나요?

 

조선 궁중음악의 정수(精髓)라고 소개하고 가르치고 있는 수제천(정읍)… 이게 어찌 조선의 궁중음악 입니까? 수제천의 고악보가 있습니까? 혹시 다른 제목으로라도 그와 조금이도 비슷한 가락이 기록된 고악보가 있던가요? 일제 관변단체(친일부역단체)였던 이왕직아악부가 연주하던 거 이전의 자료가 있나요? 명백히 20세기 이왕직아악부의 창작물을 국악계는 왜 조선시대 왕의 행차 때 연주된 가락이라고 소개하며 대국민 사기를 치는 거죠? 해외에서도 국악을 소개 할 때 그리 소개하고 있으니 국제 사기 아닌가요?

 

유네스코(UNESCO) 세계 무형문화제로도 등재 된 종묘제례악은 어떻고요. 지금 재연하여 연주하고 있는 건 실제 조선시대 종묘제례에서 쓰였던 가락이 아니잖아요? 고악보 연구를 바탕으로 18세기 가락을 복원해 겨우 재연행사 몇 번 한 게 불과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이런 사실에 대해 국악계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한 적이 있던가요? 이게 지금의 입장처럼 연주자의 전통에 의해 변천되어 계승된 것이라는 말로 스리슬쩍 넘어갈 문제 인가요? 이런 역사적 설명이 없이 소개하고 있기에 일반사람이나 일반 국악 애호가들은 지금 연주되고 있는 것이 마치 조선시대 때 궁중에서 연주된 가락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에 대해 한번이라도 바로 잡아 알리려 한 적이 있나요?

 

지금 국악계가 연주하고 있는 궁중음악들은 정확한 편찬 연대도 알 수 없어 어딘가 의심스런 속원원보의 가락과 일제관변단체 이왕직아악부가 연주하던 가락을 계승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며 연구해온 학자들을 과거에 국악계가 어찌 대해 왔죠? 왕따 시키고 대학에서 강의자리도 안주는 등의 행태가 있지 않았나요? 국립국악원이 이왕직아악부 출신들이 구심점으로 창립된 터라 친일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아 이왕직아악부에 참여하지 않던 민족주의적 국악인을 광복 후에도 홀대하고 배척했던 역사적 과오는 고백하고 청산했습니까? 오히려 왜곡된 환경에서 성장한 국악인들끼리 권위를 쌓고 각종 이권을 나눠먹고 있지는 않은지요?

 

쓰다 보니 흥분해서 두서 없이 길어졌네요. 이렇게 직접적 관계 없는 각종 이야기들을 토해냈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C교수님을 비롯한 앞선 세대의 노고와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또 그들을 존경합니다. 또 그분들께서 평생을 노력해 남겨주신 연구성과로 인해 과거 보다 비교적 많은 자료로 공부 할 수 있어 한없는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대학의 시스템을 만든 건 과거의 본인들인데 대체 누구를 나무라는지요? 자신들의 문제의식과 업적을 내세우며 이거 해라’ ‘저렇게 바꾸어 가라하지 마시고 차라리 오랜 세월 속 본인이 실천하며 겪어오신 일들 중에 개혁이 좌절되었던 시행착오와 과오들을 고백해 주시는 편이 더욱 도움되고 감사하겠습니다.

 

좀 다른 이야긴데요... 얼마 전 서울의 모 대학 교수를 지내신 70대의 한 원로 작곡가 선생님과 술자리를 가졌는데요.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우리세대는 잘못 공부했고 잘못 가르친 과오가 너무 크다. 대학도 좋게 만들지 못했다. 우리의 과오를 그대로 답습하는 후배들을 보면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너희는 우리를 반면교사 삼아 그 길을 가지 않길 바란다는 말씀을 해주셨을 때 정말 인상 깊었고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평소 존경하던 분인데 더욱 더 존경하게 되었죠. 대체로 연배 차이가 많이 나는 선생님들과의 대화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는데 반세기 가까이 차이 나는 대선배께서 본인의 생각과 과거 경험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한참 어린 후배의 생각과 고민을 먼저 들어주시고 자신의 시행착오와 과오를 고백해 주시니 더욱 더 용기 내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죠. 저도 세월이 흘러 후배를 대할 때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늙고 싶네요.


- 무직자(Muzik者) -

덧글.

정작 이렇게 쓰고 나니 혼날까 봐 무섭지만 꿋꿋이 게시할거임!

젊은이 더러 도전하라면서요. "도전하는 젊음"입니다!!

너그러이 봐주세요!

선생님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