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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비평/창작과 비평

2017 제45회 범 음악제 리뷰 II - 서울 콘서트 Day-3

by Muzik者 2017. 11. 27.


지난 리뷰인 서울 콘서트 둘째날 리뷰 (여기링크)에 이어 범음악제 서울 콘서트 셋째날 리뷰를 연재 합니다.

지난 리뷰 때 언급했듯이 사정이 있어서 리뷰가 많이 늦은 점 양해 바랍니다.


이날 연주회는 <21세기 바로크 앙상블>의 연주로 역시 국내외 8명의 작곡가의 작품이 소개가 되었는데요...

21세기 바로크 앙상블은 "바로크와 21세기의 어울림"을 모토로 하여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걸맞는 바로크 음악을 다양한 형태로 선사하는 활동을 한다고 소개하고 있네요. 한연숙(비올라), 정욱(기타), 신윤희(리코더), 이헬렌(첼로), 김희정(쳄발로)로 구성된 악단으로 이날 콘서트에는 진솔 님이 객원지휘로 참여했습니다.



21세기 바로크 앙상블의 리허설 모습 (지휘. 진솔)


그럼 각각의 곡에 대한 리뷰를 이어가겠습니다. 다른 포스팅들과 마찬가지로 황갈색으로 구분된 텍스트는 프로그램북에 실린 작곡가의 해설입니다.



정지연 사진 못구 함 ㅠㅠ

리코더, 기타, 첼로, 쳄발로를 위한 "3+1" =4 ?!


이 곡은 음악이 지니고 있는 기본 재료들을 정교한 결합을 통해 하나의 음악적 흐름으로 만들고자 시도한 작품이다. 서로 다른 길이의 리듬·음색적 패턴을 가진 악기들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복잡한 구조 속에서도 반복과 변화를 통해 흥미롭고 숨 가쁘게 움직인다.

각 악기는 독립적인 길이 (리코더 5마디, 기타 4마디, 첼로 3마디)의 패턴을 반복하는데, 이 패턴은 곡 전체에서 2번에 걸쳐 같은 모양으로 맞물리게 된다. 또한 처음 3음으로 시작되는 패턴의 반복은 정해진 규칙에 의해 음들이 추가되며 클라이맥스에 도달했을 때에는 세악기 모두 12음을 연주한다.

전체적인 흐름을 통제하는 각 패턴들은 지속적으로 반복되지만 음고와 다이내믹의 변화, 불규칙적인 악센트의 이동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에 더해 패턴의 반복에 의한 통일성뿐만 아니라 삽입구와 그 변화를 통해 다양성을 모색하였다.


첫 곡은 대학을 졸업한지 얼마 안된 매우 젊은 그리고 예쁜 작곡가의 곡이네요. 그래서 특별히 관심이 가더군요. 작곡가 미모에 관심 갖는 거 아님!!


독립적인 패턴보단 악구적 라임(rhyme)처럼 들리는


제목 "3+1"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을 해두지 않았네요. 해설을 보며 유추하건데 3음의 구성으로 시작된 음형이 점점 음을 하나씩 추가(+1)하여 3, 4, 5, 6, 7...... 개의 음으로 구성하고 절정에서는 12음으로 된 음형을 완성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해설대로 기본재료 또는 기본 음형이라 할 수 있는 스케일과 짧은 음형들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데요... 해설 처럼 각 악기의 독립패턴을 이루는 음형구의 길이가 각각 다르긴 하지만, 이런 작곡방식은 귀로 듣게 되었을 때는 인지적으로 각 패턴의 특징과 성격에 따라 특정성부의 율동이 좀 더 도드라져 들리기 마련입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우리 귀는 음악을 들을 때 호모포니 음악처럼 주제선율과 반주가 분명히 분리되어있거나 대위법 음악의 정선율과 대위선율 같이 선율적(!) 율동과 특징이 특화되어 있는 성부가 아니고서는 각각의 성부의 특징을 독립적으로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짧은 음형의 음색적 조합의 텍스쳐(texture)로 이루어진 패턴들은 아무리 성부들이 독립적으로 다른 패턴을 사용해도 그 중 성격이 가장 강하거나 율동이 가장 큰 성부의 패턴이 도드라지게 들리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특징적인 스타카토 및 특수주법등과 같은 특정 주법으로 이루어진 매우 성격적 음색, sfz와 같은 강한 음, 넓은 도약, ff-pp 다이내믹이 큰 대비 등 같은 특징들 말이죠.


그러다보니 이 작품도 3개의 성부가 각각의 패턴을 쓰지만 그 중 스타카도 도약 하행으로 마무리 짓는 완결형태의 율동을 쓴 성부가 좀 더 성격이 강해 이 패턴이 가장 도드라지게 인지되면서 일종의 라임(rhyme)이 형성되는 것 같이 들리게 됩니다.. 즉, 나머지 평이한 율동을 갖고 있는 패턴들은 텍스쳐로서 엉켜지면서 3가지 독립된 패턴의 음악이 아닌, 가장 성격이 강한 스타카토 도약 하행으로 마무리가 되는 성부종합적인 단일 변주패턴 처럼 인식 된다는말이죠.. 일종의 라임 처럼 말이죠.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나요? 저도 구체저인 인지 예시를 청각적으로 제시하면서 쓸수 없으니 곤란하네요.



예를들어 3개의 성부가 각각 <1234[?!]>, <MB>, <ㅂㄹㅎ>의 형태로 음형이 이루어져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나머지 소리는 성격적으로 평이한데 반해, 첫번째 성부 패턴 <1234[?!]>의 음형 [?!]는 성격이 강하고 특징적이라 유독 도드라지게 들린다고 합시다. 그리고 각 성부의 패턴이 아래와 같이 변주가 이어진다고 가정할 때..


성부1 : <1234[?!]><12345[?!]><123450[?!]><1234503[?!]>~etc.


성부2 : <MB><MOU><MBOU><MBUSA><MBOUT>~etc.


성부3 : <ㅂㄹㅎ><ㅂㅀㅊㅆ><ㅂ근ㅎㅊㅅㅅ><ㅂ근ㅎㅌㅎ><ㅂ근ㅎ탄핵>~etc.


변주예시에 정치적 메시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순전히 기분탓이다.


이 패턴들이 동시에 연주되면, 우리 귀로 듣게 될 그 종합적 인지의 결과물은


@#$%[?!]%$&#![?!]*&^%@$[?!]^*&$#^%[?!]~~~


처럼 들리게 된다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이 라임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건 텍스쳐로 이루어진 독립성부 패턴을 병행해서 활용한 작품들에서 작곡가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생기게 되는 인지적 측면의 변수로 수많은 작곡가들의 작품에서 들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곡가가 의도하지 않은 것이 작품에서 들린다고 하여 그 곡이 잘못된 건 아니랍니다. 즉, 이 글이 비판적 시각으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독자분들께서 알아주셨으면 해요. 꼭 정지연양의 곡이 아니더라도 그런 작곡방식으로 쓰여진 곡들이 많기 때문에 악보상에서의 작곡기법이나 아이디어들이 의도와 달리 실제 인지적인 측면에서는 그렇게 들릴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 뿐이에요. 어쩐지 졸지에 어린 작곡가의 기를 죽인 것 같아 많이 미안한 무직자(Muzik者) ㅠㅠ


만약 작곡가가 이런 패턴형 작곡법에서 위와 같은 변수를 허용하지 않고 싶다면 단순히 각각의 패턴의 길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악보상에서의 "산수"가 아니라 애초에 패턴을 만들 때 부터 각 성부를 '인지적으로 특징 지을 수 있는' 성부마다 성격이 완전히 다르고 특징이 부여된 텍스쳐나 음형구조로 패턴을 만들어야 합니다.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중 1악장이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을것 같네요.


라임이 주는 통일성과 운율


음... 쓸데 없는(!) 사설이 길었네요... 아무튼 이 곡도 평이한 음형들은 한데 엉켜 라임이 형성되었는데요.... 이것으로 인해 반복적이면서 변주적 패턴으로 어긋나는 운율감이 매우 안정적이고 또 적절히 삽입되는 돌발 악구들과 변형들이 참 매력있습니다. 결과가 좋으면 장땡입니다!!



신만식

리코더를 위한 "섬 스케치"


김환기 작가의 <섬 스케치>라는 유채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곡되었다. 그림의 안정적인 구도는 음악의 형식으로, 다양하고 화려한 색채는 리코더의 다양한 음역대 그리고 테크닉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신만식 작곡가는 예술감독 겸 기획자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이날 연주회 때도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청주공예비엔날레 일정 때문에 늦게 오셔서 자기 작품 연주를 못보셨네요.


리코더의 다채로운 소리를 속도감 있는 맥락안에 담아내


작곡가의 해설에 따르면 미술작품의 시각적인 인상을 소리로 표현해 본거네요.

초반부는 빠른 속도감과 운동성이 많은 선율율동이지만 에너지 소모적이라기 보다는 대체로 경쾌하고 밝은 움직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간간히 이어지는 리코더로 내는 다중음색(Multiphonics)의 활용이 굉장히 맥락적으로 삽입되면서 이질적인 소리로 성격적인 대비를 이룹니다. 중반이후로는 분위기를 바꾸어 한국전통음악적인 장음과 시김을 적절히 사용한 선율을 들려주기도 하더군요. 굉장히 속도감 있고 다양한 주법이 활용되는 등 연주난이도도 제법 있는 곡이었는데 연주가 비교적 훌륭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중후반부의 느낌은 조금은 원로 작곡가들의 음악패션과 궤를 같이하지 않은가 싶기도 했습니다만 (단순히 한국전통음악의 시김을 써서가 아니라 그 시김의 활용에 있어서 변용법이나 울림의 정서적인 느낌이 그랬음), 리코더로의 평범하지 않은 수많은 특수 테크닉을 다채롭게 사용하면서도 억지스럽거나 과시적이기 보다 맥락적이고 서정적인 감정선(lyric emotion) 안에서 표출되었던 점이 참 놀라웠던 것 같습니다.



안혜윤

첼로 독주를 위한 "퍼즐"


퍼즐은 사전적 의미로 어려운 문제 또는 생각하게 하는 문제이며 좁은 의미로 보면 다시 합쳐져야 하는 조각난 그림의 놀이를 말한다.

이 곡은 퍼즐놀이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어 쓰게 된 고이다. 이 곡을 통하여 퍼즐 한 조각을 들고 이 조각이 어느 부분에 맞을까 고심하는 그 고민의 흔적을 그리고 싶었다. 5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퍼즐의 조각들이 펼쳐져 있는 모습을 형상화 하였는데 1악장에선 이 펼쳐져 있는 조각들을 서로 대조시켜 각각의 조각의 특징이 드러나게 하지만 서로 조화롭게 그리고 있고 나머지 2악장, 3악장, 4악장, 5악장에선 1악장에서 제시된 각각의 소재를 중심으로 이소재가 어울릴만한 그림들을 상상을 통해 그려 나가고 있다.


제가 알기론 이분 남편분도 작곡가인데(그분 맞던가?!) 남편께서는 루빅스 큐브(Rubik's Cube, 여러개의 정육면체가 모여 큰 정육면체를 이루는 형태로 각면를 돌려 색깔을 맞추는 조합퍼즐)를 주제로 <KUBUS> (큐브의 독일말) 라는 제목의 연작을 하고 있답니다. 부부가 둘다 작곡가인것도 신기하고 비슷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네요. 부부일심동체설 증명!


퍼즐 조각은 선명하나 맞춰진 퍼즐 '그림'은...


각각의 퍼즐조각이라 할만한 것을 메모하며 들었는데요


조각 1 - 피치카토 (Pizzicato)

조각 2 - 활로(arco) 무조적 음정들 아무음 대잔치

조각 3 - 하모닉스 - 트릴

조각 4 - 하모닉스 - 아르페지오

조각 5 - 배음렬 하모닉스

(인위적 하모닉스와 자연적 하모닉스를 구별해서 사용)

조각 6 - 타악적인 소리 - 바르톡 피치카토 (Bartok Pizzicato. 현을 엄지와 검지로 당겨서 지판에 튕기듯 놓아 타악기적인 효과를 주는 연주법)

조각 7 - 울림 통 두두리기

조각 8 - 활을 브릿지 위에서 ff 로 연주


이런 조각들이 퍼즐처럼 엮이어서 하나의 그림과 같이 분명한 맥락안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형성되는지는 솔직히 잘 느끼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그냥 아무소리 대잔치 전체 맥락 보다는 짧은 단위로 부분맥락만 형성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의 그림을 그려 가기에는 각 조각의 특징이 너무 강하고 독립적인 성격을 갖고 있던 것이 아닌가 싶네요.



존예전예은

하프시코드와 첼로를 위한 "고장난 시계들" (2017)


규칙적으로 움직이던 기계가 고장나서 그 규칙성이 조금씩 깨질 때, 그것에서 종종 흥미를 느낀 경험이 있다. 하프시코드와 첼로를 위한 작품 ‘Broken Clocks (고장난 시계들)’은 규칙적인 움직임이 조금씩 불규칙적 움직임으로 변화하고, 또한 규칙성과 불규칙성 그 사이를 오고 가며 유발되는 리듬적 흥미를 탐구한 작품이다. 이와 더불어 강약의 조절이 제한적인데서 느껴지는, 다소 기계적인 하프시코드의 매커니즘과 첼로에서의 quickly (변덕스러운, 또는 부자연스러운) 리듬을 이용하여 그 효과를 더욱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전예은 작곡가님은 예전 필자와의 인터뷰가 콘서트 리뷰 기사와 함께 잡지매체에 실린적이 있는데요...(여기 (링크)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해체적 경향이나 실험적인 곡 보다는 밝은 음색으로 네러티브적인 것을 드러내는 데 더 중점을 두는 작곡가 입니다.


형식적인 안정 속에 균형감을 갖춘 울림


챔발로 (하프시코드는 쳄발로의 영어식 표현) 매력을 십분 느낄 수 있는 곡 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곡가가 의도한 규칙성의 변화보다는 쳄발로가 연주하는 화음진행의 울림 자체가 매력적이라 귀에 꽂힙니다. 쳄발로이기에 줄수 있는 울림의 뉘앙스를 잘 찾아낸 것 같아요. 곡의 전개 방식은 미니멀리즘적인 아이디어에 기초하고 있는데요... 첼로의 스케일과 쳄발로 화음연타의 조합이 귀에 매력적으로 꽂힙니다.


이 평범한 조합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냐면... 기본적으로 쳄발로는 다채로운 다이나믹의 표현이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이나믹 등의 악상을 통한 네러티브는 조금 어려운 점이 있죠. 그것을 쳄발로만이 갖는 타악적인 음색 특징을 전면적으로 내세워 씀 으로서 화음의 울림 자체에 귀가 쏠리게 하는 거죠. 그러면서도 맥락적인 화음진행을 사용함으로서 매우 안정적입니다.


한편, 불협음정과 비음정적인 소리와 비규범적 (작곡가의 해설에 따르면 변덕스러운) 텍스쳐들도 적절히 쓰고 있는데요.. 여기서 작곡가의 균형감이 돋보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균형을 잡는가하면... 조금 전통적인 방식이기는 하지만,  비음정적 또는 불협화적 음색 텍스쳐는 매우 규칙적인 패턴에 프레임화하고 반대로 협화적이고 맥락적인 소리들은 비규범적 구조에 얽혀놓는 식인 것 같습니다. 쉽게 이야기해 <아무소리 in 규칙적 구조>와 <전통적인 소리 in 아무형태>의 조화라고 할까요?! 그래서 매우 익숙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곡은 형식적으로 크게 4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것 같았는데 마지막 부분은 도입부로의 회기 즉, A' 라는 느낌을 줍니다. 단, 도입부의 A는 쳄발로 화음연타와 첼로의 스케일 조합이었다면, 종지부의 A'는 쳄발로의 화음연타에 첼로의 아르페지오를 엮었습니다.


묘사적인 측면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고장난 시계보다는 테엽장치의 장난감이 연상되기도 했는데요... 전체적으로으로 밝은 음색과 더불어 화음연타의 율동성이 강조되어서 그런지 생동감이 있습니다.


 

홍지민 사진 못구 함 ㅠㅠ

실내악을 위한 "섭리"


세상의 많은 일들이 모두 우연히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절대자의 선한 뜻에 의하여 허락되고 펼쳐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오고 있다.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 이 음악은 단편적으로 제시되어지는 세 개의 소리음형들을 도입, 분할, 해체와 결합을 통한 최종 완전체를 형성하는 흐름을 통하여, 우리가 보고 있는 소소한 일들은 결국 절대자의 주관 아래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과정임을 표현하고 있다. 바로크시대 악기들의 전통적인 주법 위에 연출한 특수주법은 전면배치보다는 낮은 볼륨의 부수적인 역할만 부여받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조될 수 있는 것은 결국은 우리가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절대자의 특별한 표상을 구현한 것이다.


이름과 달리 중년(?) 남성 작곡가 입니다.


전체에 부여된 질서와 상당히 부조화스런 음형의 병행


도입부에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전반부를 조금 놓쳤네요...ㅎㅎㅎ 그래서 집중해서 들은 나머지 부분에 대한 느낌만 적을게요. 곡은 전체적으로 어떤 성격적인 질서가 부여된 주요한 흐름이 있는데, 그 맥락에 부조화 스러운 외부 음형이 자꾸만 억지스럽게 끼어드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절대자의 섭리가 이리 부조화 스러워서야...... 이해할 수 없는 신의 뜻을 상징한 것이라면... 뭐.... 그럭저럭 납득... 그래서 이질적인 두 음악어법의 컴비네이션도 어색하고 특히 악기법(Instrumentaion)이 전략적인 미스였다고 느껴집니다. 청감상 영 맞지 않는 조화라고 할까요?


예를 들어 우스개 소리로 밥을 말아 먹는데 국에 말지 않고, 콜라에 말아먹거나, 맥주에 말아먹으면 매우 특이하고 새로운 조합이니까 포스트모던하고 맛있을 것 같죠?! 십중팔구 맛 없어서 뱉습니다. 어떤 소설이나 시가 있는데 전체적으로 정제된 문장과 교양있는 말씨를 쓰는데, 사이 사이에 급식체가 껴있는 문법으로 글을 쓰면 그 글의 느낌은 어떨까요? 신선하고 재미있어지나요? 메시지는 똑바로 전달이 될까요? 나무위키는 무어냐~? 그러고 보니 나님의 블로그 문체도;;;;


한편, 소주와 맥주는 섞으면 맛있다고 하죠. 무직자(Muzki者)는 비음주자라 사이다랑 맥주 섞어마신다능! 김치전골에 치즈 녹여 먹거나 햄 넣어 끓이면 맛있어요. 크림스파게티에 김치 곁들여 먹어도 맛있습니다. 피자위에 불고기 얹은 불고기피자 최곱니다!!! 이렇게 조화롭게 잘 어울리는 섞임은 사랑받습니다.


이렇듯 전통적 주법과 새로 개발된 신주법을 조화롭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맥락적 판단과 더불어 내재화된 감각이 필요합니다. 작가 스스로가 직접 감각적으로 맛보고 내재화하는 단계가 빠진 체, 단지 아이디어적으로만 접근해 서로 다른 성향을 단순히 병행해 사용하거나 섞어 쓴다면 어색함을 넘어 부조화스럽다는 느낌을 받게되는거죠. 그래서 여러 주법이나 소리를 단순히 섞거나 병행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찾는 과정 즉, 감각적으로 내재화되는 울림에 대한 고민이 많이 미흡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로크시대 악기들의 전통적인 주법 위에 연출한 특수주법은 전면배치보다는 낮은 볼륨의 부수적인 역할만 부여받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조될 수 있는 것은 결국은 우리가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절대자의 특별한 표상을 구현한 것이다." 라는 작가의 말은 솔직히 제게 그저 말 끼워 맞추기라 느껴질 뿐, 들려진 음악에서는 제시된 메시지 등이 음악 묘사적인 측면에서든 구조 형식론적 측면에서든 어떤 부분에서도 설득되지 못했습니다.



댄 로크래르(Dan Locklair)

하프시코드를 위한 "브래이커스 파운드"

I. Prelude

IIa. Waltz / IIIb. Rag

IIIa. Pavane / IIIb. Galliard

IV. Postlude


이 곡은 1985년 바바라 하바흐 (Barbara Harbach)에게 위촉을 받았고 그녀에게 헌정되었다. 이 작품의 형식과 개념은 스테판 샌디 (Stephen Sandy)의 시 프리웨이 (Freeway)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곡에 존재하는 이중성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스테판 샌디의 시를 반영한다. II 악장과 III 악장은 두쌍으로 된 춤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파반느와 갈리아드 (Pavane and Galliard, IIIa IIIb)는 전통적으로 한쌍으로 되어 있다. IIa 악장과 IIb 악장은 왈츠와 래그(Rag). I 악장 PreludeIV 악장 Postlude도 모음곡(Suite)에서 분리되어 있지만 짝을 이룬다. 이들의 페어링은 프랑스 서곡 스타일“(French Overture Style)을 반영한다.


1949년생의 미국의 원로 작곡가로 초청작입니다.


고전적 울림과 뉴에이지적인 감성


곡은 흔히들 말하는 현대음악은 아닙니다. 고전적인 형식과 어법을 전면적으로 쓰고 있고 대중음악(특히 경음악이나 뉴에이즈)적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작곡가가 언급한 프랑스 서곡 스타일은 모음곡(Suite)악장 구성에 대한 언급이지 음악적인 스타일을 이야기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더러 유치한 구석도 좀 있긴 하지만, 작곡가가 중년시기에 쓴 곡임에도 시골 아이들의 놀이 같은 천진한 멜로디와 반주형이 정겨웠습니다.



윤이상

리코더를 위한 "중국 그림"


매우 유명한 곡이고 이미 다양한 평가가 존재하므로...





이원정

리코더, 기타, 하프시코드, 비올라와 첼로를 위한 시편 24- "영광의 왕이 뉘시뇨"


이 작품은 구양성경 시편 24편의 텍스트를 기악음악으로 형상화 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다윗의 시로 알려진 시편 24편은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다루는 22편과 교회시대를 다루는 23편에 이어 예수 재림과 왕국 통치의 내용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다룬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왕국의 통치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1-2), 두 번째 부분에서는 환란을 당하는 성도의 구원(3-6), 마지막 세 번째 부분에서는 영광의 왕으로서 재림하는 예수 그리스도(7-10)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시편 24편의 내용에 따라 작품의 형식과 구성, 음조직, 리듬의 단위, 텍스쳐 등이 결정되었는데, 처음 제시되는 느린 서주부에서는 작품의 기초가 되는 음소재가 소개된다. C로부터 완전 5도씩 위로 쌓아올려진 네 개의 화음 (C-G-D-A)이 수직적 화성의 기초가 되며, 이 화음의 중심음은 G음으로, 수평적으로 순차 상행하는 믹솔리디아(Mixolydian) 선법의 시작음이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A음에서 확장된 E음과 B음이 추가되어 화음으로 결합하고 수평적으로는 E 도리안이 나타난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압축하여 결합된다. 엄격하게 제한된 음소재와 리듬패턴에 의한 통일성을 구축하고자 하였으며 각 성부간의 층위변화와 다양한 텍스처를 만드는 방식으로 음악적 긴장을 만들어간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시편 24:9


왜 작품해설에 분석(Analysis)을 해놨데~~~??


이 곡의 작곡가는 교회음악쪽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것 같네요.


미니멀리즘적인 패턴에 르네상스-바로크적인 선율과 5도화음의 결합


유럽 교회음악의 전통적인 어법을 변용해 사용하고 있는데요...할레루야! 교회음악의 역사적인 맥락과 의식적인 전통에 대한 작곡가의 공부와 연구의 깊이가 느껴지는 것 같네요. 아멘!


이미 해설에서 많은 분석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서 감상하며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크게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딱히 더 첨언할 코멘트도 없다더라......



바로크 시대 악기로 연주된 현대음악

이날 연주회의 매력은 역시 바로크 시대의 악기의 다채로운 매력을 느껴볼 수 있었다는 점인데요. 신만식님의 곡에서는 리코더의 현대악기로서의 다양한 가능성과 범용성을 확인할 수 있었고요... 전예은님과 댄 로크래르 님의 곡에서는 쳄발로의 울림의 고유한 음색을 한 껏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상 오늘의 리뷰를 마칩니다. 다소 혹평이 있더라도 제 개인적인 감상평에 불과하니 작곡가분들께선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기억의 착오나 감상의 부주의로 잘못 이해한게 있을 수도 있고요. 아무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 아래 공감버튼 눌러주시는 거 잊지마세요 ^^


비공감 버튼은 없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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