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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비평/창작과 비평

2017 제45회 범 음악제 리뷰 I - 서울 콘서트 Day-2

by Muzik者 2017. 11. 24.

오랜만에 블로그 포스팅을 합니다. 그동안 공연 리뷰글은 잡지에다만 기고해와 블로그 운영을 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범음악제 운영위로부터 리뷰를 부탁을 받아서 글을 썼는데 2달이 지난 지금에야 포스팅을 하네요...ㅠㅠ


그 이유는 제가 브라우저 보안 설정을 해둔 탓에 블로그 임시저장이 안되어 썼던 글을 통째로 날리고 말았답니다...ㅠㅠ 그래서 제 때 약속을 못지키게 되었습니다. ㅠㅠ 그러다 혹시나 블로그로 옮기기 전 HWP로 작성했던 한글에 자동 백업이 남아있지 않을까 갑자기 생각나서 탐색기를 뒤져 보니 다행히 첫번째 리뷰글은 80%, 두번째 리뷰글은 약 50% 쓰다가 저장된 상태의 백업이 남아있었네요..할렐루야!


그래서 오늘 시간내어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저장되지 않은 부분을 완성해 포스팅 합니다. 본의 아니게 시기가 많이 늦어 리뷰를 부탁하신 선생님께 송구한 마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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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음악제 서울 콘서트는 일신홀에서 3일간 이어졌지만, 저는 아쉽게도 개인 사정상 둘째날과 셋째날 연주회만 참석하였습니다. 그래서 리뷰는 2회 연재로 두 공연을 이야기 하도록 할께요. 먼저


콘서트 서울 둘째 날


범 음악제 공식 포스터 



둘째날 연주는 화음쳄버(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챔버)오케스트라 연주로 국내외 작곡가 8인의 작품이 소개 되었답니다. 화음쳄버오케스트라는 1993년 창단된 '실내악단 화음(畵音)'을 모태로 1996년 재 창단했다고 해요. 여기서 '화음(畵音)'은 음들의 조화를 뜻하는 화음(和音)이 아닌, 그림(畵)과 소리(音)의 화합을 뜻한다고 하네요. 박상연 예술감독의 지휘로 현재 한지은(플루트), 김주현, 조동현 (이하 클라리넷), 이은지(피아노), 박지현(바이올린), 이헬렌, 임재성(이하 챌로)로 구성된 악단으로 그동한 바로크 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넓은 레파토리의 연주활동을 해왔으며 특히, '화음프로젝트'를 통해 170여 곡에 이르는 현대의 국내외 창작곡을 연주하는 등 현대음악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국내의 대표적인 실내악단입니다.


이날 연주회는 국제 공모와 초청으로 선정된 국내외 8인의 작곡가들의 작품이 연주되었는데요 연주된 프로그램 순서대로 리뷰할게요. 황갈색으로 표기된 글은 프로그램북에 소개된 작곡가의 작품해설입니다.



입 오스틴 (葉浩堃, Yip Ho Kwen Austin)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극동으로부터의 울림"

Resonace from the Far East for Violin and piano


현들은 공(Gong)이 노래하듯, 극동 지역의 미세한 음정의 불일치처럼 진동한다.


오스틴 입(https://austinyip.wordpress.com)은 홍콩 출신의 작곡가로 미국에서 작곡을 홍콩에서는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오케스트라음악과 전자음악 및 서양악기는 물론 민속악기를 위한 음악까지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저는 잘 모르는 작곡가여서 검색을 해보니 그동안 '~로부터의 울림'(Resonace from ~)의 작업을 연작처럼 하고 있네요. 유투브를 보니 <Resonace from the Far East II>를 비롯해 <Resonance of the Cornerless>, <Resonance from the Parallel> 같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순간의 불협화적 텍스쳐의 울림에 집중한 짧은 호흡

 

ff의 짧은 음의 상승 도약 후 중음주법으로 장음의 불협화음을 pp<f 하는 도입은 사실 식상하다 할 만큼 매우 흔하게 들어온 대조법(Contrast)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러한 표현법은 곡의 시작에서 관객의 주목을 이끄는 방법 중 가장 검증되고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정적(Lyric)인 선율과 양식적 기승전결 보다는 텍스쳐로서의 순간의 음형, 음색적 대비를 즐겨 쓰는 현대 작곡가들의 수많은 작품에서 이와 같이 짧고 강렬한 ff 이후 곧바로 길고 차분한 pp 대조로 이어지는 도입은 매우 흔하게 들어볼 수 있답니다.

 

전반적인 곡의 흐름은 바이올린의 중음주법(활로 두개이상의 현을 동시에 긋는 주법)을 활용하여 불협화 음정의 부딪힘으로 생성되는 맥놀이 현상(공명현상)을 만들어 프레이즈(pharse)를 형성하던데. 아마도 "공(gong)이 노래한다"는 작곡가의 코멘트가 이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

 

대체로 순간의 울림과 음형/음색 텍스쳐를 느끼는데 집중한 듯, 초반의 흐름은 중음주법과 하모닉스 주법의 대비가 한 호흡 안에서 맥락적으로 흐른다기 보다는 호흡 별로 또는 프레이즈 별로 뚝뚝 끊겨 담는 느낌이라, 한 호흡과 흐름안에 맥락적으로 온전히 담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네요.

 

선율적인 믹스쳐(mixture, 병행화음?)의 진행은 대체로 2(또는 7,9)와 삼온음(tritone) 음정 일색이라 무조성의 지극히 단편적인 특질이 부각되어있습니다. 중반부분에서 피아노의 반주패턴은 양식적으로 클래식하기는 하지만 울림적인 부분은 무조성을 유지합니다. 그러다 종반부에 들어서 ff를 향해 긴장을 고조한 후 다시 pp의 늘어지는 흐름으로의 마침은 형식적으로 A’의 회기로 전통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전통적인 양식 안에서 울림(공명)의 순간을 표현한 음색적 텍스쳐와 무조적 믹스쳐를 엮어낸 작품이라 사료됩니다. 개인적인 청감 상 듣는 재미는 있었던 곡입니다.




이혜빈

플루트,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저항"


젊음이란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이다. - 활기찬 자유로움,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즉흥성과 반항, 이 곡에서는 젊음의 이런 이중성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C음의 배음열과 블루스 스케일을 음재료로 사용하였으며 다이내믹의 대조와 즉흥적인 패시지도 곡의 진행에 중요한 요소로 활용하였다.


이혜빈은 20대의 매우 젊은 작곡가로 현재 대학 조교로 재직 중이라고 하네요. 본인에 대해 촘촘한 텍스쳐(Texture)와 재즈적 리듬 및 배음열을 접목시킨 작곡법을 연구 중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앙상블의 기본에 충실하면서 감감적인 센스가 돋보인 곡

 

개인적으로 이번 연주회에서 가장 재미있게 들었던 작품인데요. "앙상블"이라는 기본 개념에 매우 충실한 곡으로 악기별 소리분배와 역할안배가 감각적으로 매우 훌륭합니다. 비슷한 형태가 변주적 반복을 이어가며 중간 중간 개입되는 돌입적인 텍스쳐가 인상적이고 특히 다소 날로 먹다 싶은(?) “스케일의 삽입이 매우 효율적으로 텍스쳐간 연결구를 형성해 줍니다.

 

특히, 소리에 대한 감각적인 센스가 돋보였던 부분은 Tutti(전원,전악기)가 연주하는 배음열에 기초한 화음인데 각 악기 간의 셈여림을 차등 분배함으로서 배음원리에 충실한 편안한 울림을 만들어 내더군요.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맥락 없는 특수주법의 활용인데요. 배음렬을 활용한 음향적 텍스쳐나 스케일등은 음형적으로 훌륭하게 맥락을 형성하고 있는 반면에 일부에서 사용되고 있는 플루트의 키클릭(key clicls)과 슬랩텅(slap tongue), 피아노의 보면대 두두리기 등의 특수주법이 전체적인 흐름에서 상당히 맥락을 저해합니다. 플루트의 제트휘슬만이 유일하게 맥락적으로 효과적이었고 그 외에 것들은 불필요한 기법적인 과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특수 주법을 꼭 그렇게 다 써먹어야만 속이 후련했,냐?!

 

이게 또 한편으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과거 무직자(Muzik)도 자유롭지 않았던 점으로, 이건 젊은 작곡가들 특히, 아직 배움의 시기에 있는 대학()생 작곡가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중 하나에요. 아무래도 배움의 시기에 있는 학생들은 그동안 배운 다양한 특수 주법들을 자기 작품에서 최대한 많이 활용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니까요.

 

프로필을 보니 소위 명문대 출신은 아니던데... 한국 클래식 음악계가 학력/학벌주의가 강하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공정한 공모를 통해 이런 작품을 선별했다는 점에서 범음악제 측의 안목도 참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다른 프로그램을 보면 학맥이 보인다능!!



이재구

바이올린, 클라리넷 피아노를 위한 "금호동 II"


I. 현실의 높음과 희망의 낮음 사이에서

II. 희열과 고통의 변증법(1) - 블루스, 혹은 성긴 노래

III. 희열과 고통의 변증법(2) - , 혹은 몰입된 춤

IV. 하늘에 이르는 계단


attacca 주석 (음악용어. (악장(樂章) 끝의 지시로 휴지없이) 즉시 (다음 장으로) 계속하라) - 로 중단없이 이어지는 네 개의 작은 음악 단편으로 구성된 2017년 작품 <금호동>1년 남짓 금호동의 한 작은 교회의 지휘자로 오가며 받았던 나의 개인적인 인상을 음악적으로 서사화한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내 몸의 기억력은 짧고, 나의 손끝 기술은 여전히 민첩하지 못해, 금호도에서 받은 인상들의 강렬함에 비해 내가 구성해 낸 음악은 작고 소박하기만 하다.k 하지만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 나의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아프게 짓눌렀던 경제-사회적 무게를 이 곡을 쓰는 가운데 금호동의 따뜻한 사람들과 (비록 가상 속에서나마)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버텨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나의 감사의 이유는 차고 넘친다. '자본주의적 우울'은 한 번도 내게 달가운 감정이었던 적이 없었음에도, '우울'의 긴 터널 끝에 '자유와 해방'의 기쁜 소식과 '희열'의 즐거운 노래가 이미 울리고 있는 듯하여 이 곡을 쓰는 내내 힘겨웠지만 행복했다. 애써보지만 사람을 위한 음악을 쓰자라는 결심은 이번에도 실현되지 못한 듯하다. 이 곡은 결국 또 한번 나를 위한 살풀이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한 번 더 사람들에게 큰 빚을 진다.


작곡가의 프로플을 보니 작곡을 공부하기 전 생명공학을 전공했던 이력이 독특하네요. 그 외 프로필에 소개된 학력 정보는 굳이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작곡가의 학력 등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지라...


사람과 음악을 대하는 작곡가의 진솔함이 느껴지는 곡 


1악장은 제목을 직유(直喩: 직접적으로 비유)하듯 직접적인 묘사로 피아노가 극저역과 극고역에서 화음을 생성하고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은 저음에서 고음으로 선율적인 화음으로 분위기를 만들며 서사적인 상승을 이어갑니다.

 

2악장은 중간 중간 민속적인 멜로디의 주제선율(성긴 노래?)가 출현하며 대체로 편안한 울림을 펼쳐가는 가운데 잠깐 식 연속적인 스타카토로 긴장감을 조성하기도 합니다. 제목처럼 블루스의 양식은 아니였습니다.

 

3악장은 대체로 서정적이었던 2악장과 달리 긴장감을 조성하며 분위기를 반전합니다. 제목에 쓴 2악장도 마찬가지였지만, 특정 음악장르 양식을 뜻하기 보다는 어떠한 심정적 정서를 대변하는 말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4악장은 저음부에서 고음부로 진행하는 처음의 1악장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나, 음형적으로 1악장과 달리 화음적으로 펼친 선율의 상승이 아닌, 트릴(바이올린, 클라리넷)과 트레몰로(피아노)로 상승합니다.

 

개인적으로 참 감명 깊게 들었는데요... 현대음악에서 드물게 들어보는 따뜻한 감성과 정서를 담고 있는 곡이라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을 위한 음악을 쓰자는 작곡가의 코멘트처럼 음악을 대하는 작곡가의 진솔함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도깨비 김신

플루트,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멸화"


본디 "멸화"라는 단어는 사전에 없는 단어이지만, 작곡가 본인이 한자의 뜻을 엮어 창조한 단어이다. 한자를 직역하면 '불씨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뜻이지만,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소화''진화'의 의미와는 별개의 의미와 감성을 부여하고 싶었기에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냈다. 작곡가 본인이 생각한 멸화, 불씨가 사라지는 하나의 현상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 불씨를 사라지게끔 만들고자 하는 존재의 결의와 사그라지지 않기 위해서 버티고 버티는 불씨의 의인화 된 입장을 모두 포함하는, 하나의 조용하고 거대하면서 동시에 매우 미시적인 시놉시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곡 안에는 시종일관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요소들 - 사그라지는 불씨의 "잔잔함",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유동성", 그리고 그 유동성()을 잠재우려는 "압력"이 상호작용을 하며 진행된다. 하지만 결국 "멸화"라는 단어의 언어적 의미가 가지는 바와 같이, 이 모든 것은 결국 죽어서 사라지고 만다.


이제 만 23(’94년생)의 매우 젊은(!)작곡가네요.. 어딜봐서 저게 20대야?! 사진은 30대 중반......

한예종에 재학중인 학생인데 국제 교류프로그램으로 오스트리아 빈(Wien)에서 잠시 수학하였다는군요.


기술적 완성도는 높으나 전형적인 20세기 후반의 독일 현대음악 패션


먼저 언급할 것이 무직자(Muzik) 대체로 20~30대 작곡가들의 작품에 대해 우호적인 편이에요. 곡의 완성도나 기법, 기술적 미흡함이 있어도 아이디어가 신선하거나 실험적 성격의 곡에 대해서는 그 도전성과 실험성을 좋게 보는 편이죠. 또 실험적 성격이나 개성이 강한 곡이 아니라면 앞선 이혜빈의 곡처럼 충실한 기본기와 감각적 센스를 주목하는 편이죠. 그런데 이곡은 제 개인적인 경험과 인식 때문에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할 것이 많습니다.


일단 곡 자체는 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좋았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완성도 또한 높은 편입니다. 20대 학생 답지 않게 상당히 탄탄한 곡이라 생각합니다. 또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소리나 울림들로 가득하죠. , 실험성과 형식·기술적 완성도 모두 상당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혀 감명 받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필자가 유학시절 독일의 20~30대 작곡가들에게서 흔하게 듣던 스타일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에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이 든 곡이기도 했죠. 이글을 쓰면서도 고민된 부분이기도 했고요.

 

작곡가가 빈에서의 짧은 수학기간 동안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것에 감명하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독일 및 오스트리아 등의 주류 아카데미즘에 입각된 노이무직(Neumusik)의 영향을 너무 많이 흡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 <멸화>는 전체적으로 특수주법과 소음을 활용한 비음정적 음형의 율동과 중간 중간 sfz의 강조를 통한 대비(Contrast)로 점철된 소리들의 향연인데요... 그런 소리들을 쓰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너무 독일 현대음악에 "패션"적으로 충실하더라는 점이죠.

 

그러다 보니 '비평범한 소리'들을 적극적으로 대량 사용하고 있음에도 굉장히 '평범한 현대음악' 쯤으로 인식되버립니다. 그래서 현대음악이라는 '장르'의 관점에서 보자면 20세기 후반 독일-오스트리아의 아카데미 유행에 너무 충실했던 게 아닌가 싶어 아쉬운 마음이에요.

 

사실 지금시대의 현대음악에서 피아노의 타악기적인 쓰임이나 관악기의 특수주법 등과 같은 비음정적 소리들은 더 이상 특별한 요소가 아니죠. 그래서 음 소재 또는 음형적인 아이디어로서 그걸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 자체에는 별 의견 없습니다. 다만, 그러한 너무 남용된 특수주법과 sfz를 통한 극단의 대비의 연속은 곡에 긴장감을 주거나 특별한 인상을 주기보다 그냥 "현대음악"이구나 라는 느낌만 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제언하고 싶은 것은 아직 20대 초반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젊은 작곡가이니, 유럽의 현대음악 및 사조를 공부하고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20세기 중·후반 중부 유럽의 주류 아카데미의 현대음악 패션을 무분별하게 좇기 보다는, 진정 자기 음악이 무언인지 작가로서 좀 더 고민해 보아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대 답지 않은 상당한 작품 완성도는 물론 악기 활용법에 대한 지식도 나쁘지 않고 기성 현대작곡가들의 기법과 패션들을 곧잘 흡수하여 카피해내는 재능이라면 김신의 성장 가능성은 정말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방향을 좀 더 고민해 보면 어떨까 싶네요. 그렇게 백년을 살아 어느날, 날이 적당한 어느날, 대가로 기억될 수 있기를 하늘에 허락을 구해본다. 사실 곡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어린 작곡가에게서 저는 갖지 못한 좋은 재능이 느껴져서 이런저런 잔소리가 늘어졌네요.



네빌 홀 (Neville Hall)

플루트, 베이스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촘촘하게 엮인 안개로 덮인(2017)

(Coverd with close-webbed mist for flute, bass clarinet, violin and cello, 2017)


이 작품은 총 8개의 짧은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악장들 중 가장 짧은 악장의 경우 약 10초 정도로 매우 짧다. 이 작품의 소재는 전체 앙상블, 적은 악기의 조합 또는 솔로 악기로 표현되는 "" 또는 "사운드 객체"의 확산성에서 얻었다.

이 셀들 중 네 개는 "단편" 이라고 표시된 네 악장에서 독립적으로 들리게 된다. 각각의 단편 사이에는 "준비"라는 라벨이 붙은 악장들이 존재하고, 이는 더 긴 셀들의 연관 고리를 나타낸다. 비록 순서대로 제시되지는 않더라도 각각의 악장은 네트워크를 통한 경로의 설정과 더 큰 단위로 고착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며 기본 셀들을 연결하고 계층 한다. , 주 악장은 모든 재료들을 형상화하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이는 모든 "준비" 악장들의 확장이다.


프로필을 보니 뉴질랜드 출신으로 현재는 슬로베니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이군요.


이해가 좀 어려운 작곡의도, 감상으로서도 재미없는 음악

 

문장의 번역이 조금 깔끔하지가 않아서 그런지 작곡가의 해설의 이해가 조금 어렵네요. 특히 <각각의 악장은 네트워크를 통한 경로의 설정과 더 큰 단위로 고착 할 수 있는 방법>이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네트워크란 그물처럼 얽히는 관계망을 이야기하죠. 그런데 음악은 시간적 예술인 고로 어쩔 수없이 소리 구성은 동시적 연결이 아닌 시간적 연결에서 악장--객체간의 그물망을 형성해야 할 것이에요. 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작곡가가 의도한 분명한 네트워크의 경로를 감지하기가 많이 어렵더군요. 내가 의도를 잘못 파악한 건가...

 

해설에서 중요한 말로 구분해 놓은 따옴표가(“”)가 있는 단어들은 원어(영어) 설명에서는 각각 Cell ()Sound objects (사운드 객체), Fragment (단편), preparation (준비) 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실제 음악도 작은 순간에 집중한 듯한 악상들(=객체?)이 연이어 나옵니다. 그러나 제 느낌에는 단순히 객체의 나열일 뿐, 네트워크로서의 맥락적인 관계는 잘 인지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금은 자폐(自閉)적이다 할 만큼 내면적 순간의 울림에 집중된 단편들이 독립적으로 울리며 나열될 뿐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지요. 그러다 보니 감상적으로도 많이 지루했고요.



설수경

클라리넷,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부서져버린 것들에 부치는 송가 I"

(Ode to Broken Things I for clarinet, cello and piano)

 

 이 작품은 Pablo Neruda의 동명시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1악장에 해당한다. 작가가 서술하고 있는 부서져 버리고 있는 주체보이지 않는 힘의 대립되는 관념을 주제로 하여, 세 악기의 음색, 화음, 선율, 리듬의 음악적 요소들의 긴장과 완화에 대비시켜 표현하고자 하였다. 시간의 흐름 안에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부서지고, 낡아져 버리는 것은 비단 사물만이 아닐 것이다. 상대성을 가지는 시간의 특성을 보여주기 위해, 2악장에서 부서지는‘, ’부서트리는각각의 주체가 간접적으로 묘사되었다면, 1악장에서는 그 각각의 주체가 직접적으로 묘사되도록 하였다.

 

한국과 미국에서 음악공부를 한 작곡가는 과거 K팝 앨범의 편곡작업이나 드라마 음악 작업등을 했다고도 하네요.


시상(詩想)을 모르니 악상(樂想)을 좇을 수 없어

 

해설에서처럼 '부서지는' <-> '부서트리는' 이라는 상반된 각각의 주체를 직접 묘사한 듯이 전반부와 후반부의 전개와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후반부에서는 드뷔시의 색채와 표현법이 매우 강하게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형식적인 분리도 그렇고 각 악구의 흐름 속 긴장-완화 등의 관계들을 들어보아 곡의 전체적인 키워드는 대비인 것 같았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Pablo Neruda의 시를 읽어 본적이 없다보니 작곡가가 영감을 받았던 시상(詩想)이나 정신·정서적 관념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모르고 들은 건데요... 그래서 그런지 감상 중에 내러티브(narrative)의 흐름을 쫓아가기는 어려웠지만, 긴장의 조임과 완화의 대비가 적당하니 쫀득해(?) 듣기는 좋았습니다.




김경자

플롯, 첼로, 피아노를 위한 "꽃들에게 희망을"

 

Le Souhait pour Les Fleurs (Hope for the Flowers)Trina Paulus의 원작 "꽃들에게 희망을"을 표제적 음렬음악으로 작곡한 것으로, 한 마리의 애벌레로 비유되는 인간의 욕망의 덧없음과 가장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애벌레는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하여 힘을 다해 기어 올라가는 벌레들의 대열에 합류하여 다른 벌레를 짓밟고 고군분투하여 마침내 정상에 다다르나, 거기에 아무것도 없음을 보고 허무한 마음으로 내려와 갈등의 삶을 산다. 나비가 되려면 자신을 포기하고 몸을 실로 감싸 번데기가 되어야 하는 것을 알고 갈등하다가 결국 나뭇가지에 매달려 번데기로 변한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맛보며 꽃들에게 생명과 희망을 주는 나비가 되어 날아오른다."는 내용을 플루트, 첼로, 피아노의 음색과 다양한 기법, 음구조의 변화 등을 통해 시각적, 청각적, 그리고 심리적으로 묘사하였다. 또한 동작과 움직임을 표현하는 외적 묘사의 Set과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내적 묘사의 Set을 서로 다른 음구조와 음색, 기법 및 아티큘레이션으로 병용되도록 고안하였다.


중견작곡가인 김경자님은 국내 현대음악씬에서는 학생들을 제외하면 드물게 볼수 있는 순수 국내파 작곡가인데요, 유학파가 득세인 업계(?)에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표제음악으로서 어쩔 수 없는 조금은 진부한 장면묘사

 

해설에서 무직자(Muzik)의 눈길을 끈 건 "표제적 음렬음악" 이라는 언급인데요.... 이 말이 해당 곡의 성격과 전개 양상을 함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렬음악이라 그래서 그런지 초반부는 베르크(Berg)의 음악과 많이 닮았다고 느낌.

 

작곡가의 해설처럼 표제음악(Program Music)으로서 장면묘사와 이야기 전개를 표현하고 있기에 곡 전반에서 조금은 관행구 같이 진부한(clichées) 표현패턴들이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나비의 날개짓을 형상화한 플루트의 선율 율동 같은...

 

이건 표제음악이기에 장면이나 이야기 전개를 효율적으로 묘사하고 전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죠.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각 악기들의 역할이 마치 캐릭터로서 고정되어 있는 것 같이 너무 제한적인 역할에만 충실하지 않았나 싶었답니다. 서로 교차되거나 음색적인 분배가 이루어져 소리를 형성하기보다 각자 패턴화된 경향이 강했죠. 음렬을 너무 충실히 활용하려 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왜 굳이 음렬인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데이빗 쥬베이 (David Dzubay)

플루트,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을 위한 "쿠쿨칸 II"

(Kukulkan II for flute, clarinet, violin, cello and piano)

 

치첸 이트카 (Chichen Itza)의 고대 마야 유적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반신반인으로 알려진 쿼차코탈(Quetzalcoatal)인 톨테크(Toltecs)와 아즈텍 (Aztecs), 혹은 "깃털가진 뱀" (Feathered Serpent)로 알려진 쿠쿨칸 (KuKulkan)의 신전과 이국적인 의식을 보여주는 Great Ball Court 앞에서 경외감을 표시했다. 이 작품은 치첸 이트카에서 발견된 유물들에 의식적이 성격을 투영해보는 환상의 비행이다.


본 음악제의 초청 작곡가이기도 한 쥬베이는 현재 미국 명문 인디애나 음대의 작곡과 교수로 한국인 제자들도 많이 있다고 하네요.


미니멀리즘 바탕에 두드러진 메시앙의 색채

 

6악장으로 된 긴 곡인데 검색해 보니 유투브에 연주영상이 있네요

1-3악장 (들어보기)

4악장 (들어보기)

5-6악장 (들어보기)

 

의식적인 성격(ritualistic character)이 투영된 환상곡이라는 것이 작곡가의 설명인데요... 쿠쿨칸이 어떤 곳인지 가본적이 없어서 그런가, 곡을 들으며 의식적인 부분은 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곡은 전반적으로 미니멀리즘(minimalism)적인 성격을 띄고 있는데 단순한 리듬을 바탕으로 협화음과 스케일들로 짜여진 음형들을 반복적으로 활용하네요. 화성적으로 협화적인 화음을 많이 쓰는데도 어떤 악장은 어쩜 이리 재미없게 들리는지...ㅎㅎㅎ 3악장은 소리를 점묘적인 악기배분으로 선율 및 음형을 잇고 있습니다. 또 1, 3악장에서는 들리는 선법적인 음형과 화음색이 어쩐지 성격적으로 메시앙의 음악에서 들었던 것들과 많이 비슷하다는 느낌도 있어요. 유투브에 올라온 다른 곡들을 들어보니 이사람은 실내악보다는 관현악 곡이 더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예를 들면 이거(링크)



진솔했던 이재구의 음악과 신예 이혜빈의 발견

 

이날 연주회에서 개인적으로 이재구, 이혜빈 작곡가의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이재구님의 작품은 아카데미적인 (학구적인) 성향이나 기술적 실험에 치중하기 보다 현대음악씬에서 듣기 힘든 사람을 향한 진솔한 마음이 담긴 음악으로 그 표현 또한 매우 잘 와 닿아서 특히 좋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문대 출신도 아닌 젊은 신예 이혜빈의 발견은 본 음악제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상으로 범음악제 둘째날 공연 리뷰를 마치고요. 다음 포스팅에서 셋째날 공연(21세기 바로크 앙상블)을 리뷰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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