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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비평/창작과 비평

하우스 콘서트 - 작곡가 시리즈 5. 이의경 <삶과 노이즈> 리뷰

by Muzik者 2015. 9. 16.

정말 오랜만에 공연리뷰를 올리네요. 그동안 여러 연주회/공연 등을 다녀왔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포스팅을 계속 미루다 보니 못 올린 글이 참 많네요... (무직자 주제에 이놈의 게으름이란ㅠㅠ)


오늘은 얼마전 (2015년 9월14일) 혜화동 예술가의 집 3층에서 있었던 "하우스콘서트" 작곡가 시리즈의 다섯번째 주인공인 이의경님의 공연 <삶과 노이즈>(링크)를 리뷰합니다.



작곡가? 미디어아티스트? 전시예술가? 전자음악가? 아무튼 이것저것 복합된 작품을 선보인 융합예술가(!) 이의경은 이제 막 30을 넘긴 젊은 예술가인데요... 특이하게 일본에서 유학한 경력이 있네요. 90년대 이후로는 일본 유학이 젊은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별로 선호되고 있지 않기에 좀 색다른 이력으로 보입니다. 현재는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에서 유학하고 있다는 군요.


사실 무직자(Muzik者)는 이의경님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처음에 지인이 이 공연정보를 알려주었을 때 못간다고 일러두었습니다. 왜냐하면 하필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예술의 전당에서 아는 후배의 실내악 공연이 예정되어 초대권 까지 받은 상태였거든요. '미모'의 여성4인조로 구성된 실내악계의 '걸그룹' 로제호임 현악4중주단 (Rosehoim String Quartet)의 연주회를 놔두고 시커먼 남정네들만 잔뜩나오는 공연 따위에 무직자가 줄 관심은 1도 없으니까요...

더구나 대충 프로그램을 보니 영어 독어 섞여 있는 난잡한 안내에 기가차서 헛웃음만 나오더군요.


하지만 무심코 자세히 프로그램을 읽어 보고 무직자의 작가적 고질병인 호기심과 궁금증이 동해서 도무지 안올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어그로를 끈 문제의 프로그램은 아래와 같습니다.


<삶과 노이즈>


백남준 (1932-2006)

One for Violin Solo

이의경 (Violin)


Peter Ablinger (*1959)

Das Wirkliche als Vorgestelltes for One Speaker with Electronic Noise

이의경 (Speaker)

(영어랑 독일어가 섞여있는 이 제목은 뭐꼬? 번역 안해주남?)

웅변자와 전자공학적 소음의 작품 "연출된 것으로서의 실제" (??... 의역임, 자신없음ㅋ)


1st Improvisation (No Input Mixer with Leap Motion)

이의경 (No input Mixer)


Peter Ablinger

Weiss/Weisslich 17 for violin and Noise as Videoversion

이의경


2nd Improvisation (no input mixer with electronic Guitar)

이의경 (No input Mixer)  박진우(Electronic Guitar)

응?! Electric Guitar 아님?! Elctronic?! (영어 자신없음!!)


이의경 (*1984)

My girlfriend isn't born yet for Piano solo


이의경 (*1984)

This breath, That sky, Those infinity for Violin and 2 different tuned amplified Pianos

산도 유리 (Violin), 이상욱/손세민 (Piano)


Alvin Lucier (*1931)

I'm sitting in the room Video-Interpretation


그렇습니다. 다른 건 다 안궁금했습니다. 단 하나의 작품의 제목이 무직자의 가슴을 두드리니 그것은 바로...


My girlfriend isn't born yet

(나의 여친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ㅠㅠ 혀... 형제여~!! 눙물이 앞을 가린다~



저 제목 하나가 심장을 울려 '걸그룹' 로제호임의 초대권을 당일에 무르고 무려 2만원짜리 공연을 보러 '예술가의 집'으로 향했습죠... 또 다시 눙물이.. 걸그룹 & 내 돈...ㅠㅠ


그럼 공연의 내용을 차근히 리뷰해 보죠. 이 공연은 중간에 휴지(休止, Intermission) 없이 진행되었는데요 이의경 본인의 작품들과 함께 백남준, 페터 압링거(Peter Ablinger), 앨빈 루셔(Albin Lucier)의 작품을 재해석/활용하여 하나의 대주제 안에서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지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20세기 중반 충격적인 퍼포먼스와 해프닝으로 주목받았던 아방가르드 예술의 선구자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등과 함께 뉴욕파(New York School)로 불리기도 했던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의 유명한 해프닝 작품인 "하나" (One for Violin solo, 1962)(작품설명링크)로 시작된 본 공연은 백남준의 퍼포밍을 그대로 재현한다기 보다, 이의경 작가의 의도 안에서 재해석되어 본 공연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전 프로그램을 관통하고 있는 문제의식을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듯 합니다.


먼저 공연시작 전에 공연이 진행될 '하우스' 안에는 여느 카페처럼 가벼운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관객들은 각자 자리에 앉으며 같이 온 지인들과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별다른 공연 시작에 대한 안내가 없었기에 카페와 같은 분위기에 다들 방심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이의경이 느닷없이 바이올린을 탁자에 내리쳤고 "쾅"하며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카페 분위기를 내주던 음악소리도 멈주고 일순간 장내는 침묵과 함께 정적에 휩싸였으며 관객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의경을 주목하게 됩니다.


파괴와 해체를 통해 고정 관념적인 음악(카페 분위기의 음악) 멈추고 침묵/정적을 만들어 새롭게 음악을 해석하며 만들어간 본 공연은 곡 압링거(Ablinger)의 작품을 재연/재해석한 퍼모먼스로 이어집니다. 뭔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준비된 원고를 힘차게 읽지만 전자공학적으로 생성하여 스피커를 울려대는 백색소음으로 인해 이의경의 웅변을 도무지 알아 들을 수 가 없습니다. 뭔가 진지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비장하게 외치지만 모든 메시지는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무심한 백색소음에 가려져 그의 비장한 표정은 이내 알량한 지식인의 몸부림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원작자의 공연과 작품해설 (독어 주의!)


그 모습을 보자니 마치 지난 우리 역사속에서 일찌기 새 시대를 예감하고 우매한 대중을 일깨우려 진보적 운동가들이 대중 앞에서 위대한 사상과 철학을 역설하지만 그 어려운 사상과 내용을 이해 못하고 지나치며 자신들의 공해와 같은 삶은 그대로 살아가던 우리네 모습이 머리 속에 스쳐지나 갑니다.


곧 이어 클라리넷과 키보드 곡인 AS LONG AS you LOVE ME 가 연주되는데 클라리넷은 몸체가 모두 해체되어 있는 상태로 연주자는 마우스 피스만으로 소리를 내거나 몸통 나팔관 만으로 소리를 내거나 하는 식입니다. 혹시나 싶어 유투브에 찾아보니 작곡가 본인이 올린 다른 공연에서의 영상이 있어 올려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들어보세요^^



위에 영상처럼 마지막에 피아니스트 임현묵이 윙크와 합께 손으로 키스를 날리며 연주가 끝나는데 그 도발적인 눈빛에 그만.. 순간적으로 욕 나올... 답 뽀뽀를 날릴 뻔...



그리고 이어지는 첫번째 즉흥연주는 매우 흥미로운 퍼모먼스로 이의경이 믹서를 조작하여 내는 소리와 함께 김종현 (작곡가, 전자 음악 프로그래머)이 다양한 손동작을 선보이면 사전 프로그래밍한 모션인식 패치를 통해 다양한 음정이 전자공학적 음향으로 펼쳐집니다.


그 다음 다시 압링거(Ablinger)의 작품을 강남 등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재연/재해석한 영상이 프로젝터를 통해 스크린에 상영됩니다. 혹시 유투부에 올린 이의경의 영상이 있난 찾아보았는데 아쉽게도 본 공연에서 상연된 영상은 없네요. 원작자와 다른 예술가가 재연한 영상은 있는데 일상의 공간에서 일상의 소음 속에서 재연된 이의경의 재해석이 원작 보다 더 돋보입니다만 이 블로그에서는 보여드릴 수 없어 아쉽네요.


이어서 "수퍼 메가 우쿨레레"(Super mega ukulele, 전자기타)(링크)와 믹서조작이 이루는 두번째 즉흥연주가 진행됩니다. '수퍼 메가 우쿨레레'의 경우 반지를 이용해 현을 미끌어뜨리며 연주하거나 활을 활용하여 이색적인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소음이 앞도적이고 음량이 강해 귀가 많이 아픕니다. 어떠한 선율을 형성하기 보다는 굉음을 내는 데 집중하고 있지요. 관객들도 귀가 아픈지 여기저기서 표정을 찡그리며 귀를 막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난청 되면 책임져라!!


그리고...... 드.디.어!... 마.침.내! 기대해 마지 않던... 뭍 사나이(루저들)의 가슴을 울린 명대사를 타이틀로 단 피아노 작품이 연주됩니다. 명목상 피아노 곡이지만 건반위에서 연주되는 것보다 그외 부분에서 내는 소리가 더 많습니다. 페달을 특정한 리듬패턴으로 강하게 밟아 타악적 리듬감과 함께 현의 잔향이 울리게 되고 특정음을 빠르게 반복하여 내며기도 하고 물병같은 거에 입을대고 요상을 소리를 내며 아르페지오 하기도 합니다. 피아노 안쪽 현부분을 이물질로 비비기도 하고 고무줄로 튕기기도 하는 등 "별 짓"을 다합니다. 그러니까 여친이 없지!!ㅋ 연주자가 발짓, 손짓, 신음 소리 등 할께 많다 보니 좀 집중도가 떨어지는 측면도 있고 간혹 미스터치가 있어서 아쉬움이 있네요.



곧 이어 스크린에 다시 비디오가 상영되는데 이의경이 편집한 영상 속에는 각종 화면들이 난무합니다. 먼저 리퍼트 주한 미(美) 대사 피습사건 때 성조기와 태극기를 휘날리며 북 난타 쇼를 펼치는 개신교 단체의 모습이 등장하고 군인들의 모습과 해병대 캠프에서 훈련받으며 악쓰고 우는 어린이의 모습도 지나가고 이의경이 피아노 건반을 쿵쿵 울리는 장면, 손가락으로 건바을 한두개 씩 때리는 영상을 여러개 편집/연결해 독특학 선율/리듬을 형성하는 등 별별 영상들이 맥락없이 이어지지만 그것들을 아우르는 대 주제는 짐작이 갑니다. 마지막에 옷 페기물 더미가 쌓여있는 공간에서 기계가 옷 더미를 들어올려 떨어뜨리는 장면이 많은 여운을 남기네요. 개인적으로 말떡(한쌍의 말이 교미하는) 장면이 제일 인상 깊음!!!


마지막(!)으로 바이올린과 서로 다르게 조율된 2대의 피아노를 위해 작곡된 곡이 연주되었는데요.... 음.... 바이올리니스트가 일본인 인데요...... 유리짱! 가와이네~~ 매우 무심한 듯한 무표정으로 연주를 하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는 것이 순간 사륜안을 개안할 뻔 했네요.ㅋ 마치 예전에 첼리스트 사태 (2014 작곡제적 III 1부 리뷰 참조)(http://muzikza.tistory.com/8)(링크) 처럼 연주자의 자태를 감상하느라 음악이 잘 귀에 안들어 온다는...


그래도 불굴의 정신력으로 메모를 하며 감상하였는데요 바이올린은 어떠한 선율이나 리듬감을 형성하기 보다 대체적으로 고음의 하모닉스를 글리산도하는 것이 주를 이루고 피아노가 리듬감 있는 터치를 하거나 미세히 다르게 조율된 피아노를 이용한 울림들로 '맥놀이'를  만들어 내는데요 이런 맥놀이는 반음보다도 좁은 음정관계들이 뭉치면서 주파수가 겹치며 교차하게 되어 왕왕~ 거리는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몇가지 아쉬운 것은 서로 다르게 조율하여 특별한 음향 효과를 유발하려 하면서도 피아노 울림의 구성이 단조로운 패턴으로 구성된 감이 없잖아 있고 무엇보다 클러스터 VS 클러스터는 조율의 차별을 둔 것이 퍼포먼스 말고는 음향적으로는 무의미 하다 싶은 생각이 들더 군요. 차라리 단조로운 화음이나 음정관계가 대립했더라면 조율차로 인한 음향효과가 더 극명히 들어났을 테니까요.


위 곡을 마지막(!)으로 준비한 공연을 마무리 하고 작가로서 관객과 이야기하며 피드백과 질문을 받는 시간을 15분 정도 가졌는데요...  흥미롭게 첫 질문을 어린아이가 했습니다. 작곡가로서 무슨 생각을 하며 곡을 쓰느냐는 당돌한 질문

에 모두가 빵! 터졌는데요... 아이의 당돌한 질문에 친절히 답해주었지만 전체적으로 정치적인 메시지나 사회 저항적 정신이 담긴 작품을 선보인 터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주어 설명해 주느라 진땀 빼는 이의경님의 모습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백남준의 작품을 재연한 이유나 현대예술의 "똘끼" 또는 독창성 싸움에 대한 의견, 음악 외적 부분의 융합에 대한 것 들 제법 날카로운 질문들이 나왔는데요. 이날 관객들도 이 예사롭지 않은 공연을 통해 깊은 감명과 함께 많은 생각을 하게 된 듯합니다. 


일단 작가님의 작가로서 성장과정을 이야기하는데요... 일본에서 정치적 또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기보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며 감성적인 태도로만 접근하는 문화에 대해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지만 독일에서 접한 사회성 짙은 작품들이 대우받고 주목 받는 것을 보고 감명받았고 일련의 역사들을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러면서도 음악 외적이 요소들이 표현 방법이나 재료(Material) 로서 중요하게 사용되지만 결국에 음악 내적 컨텍스트(Context)에 대한 내재적 고민이 없이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르지 못한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이야기 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동양의 문화에서도 과거에는 사회적 메시지나 저항이 담긴 예술작품은 있었죠. 우리네 판소리나, 북청사자 놀이 등 여러 탈춤 공연들이 그러하였고 광대들의 놀이가 대체적으로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어으니까요. 중국의 경극 또한 대단히 정치적인 암투와 사랑이 풍자적으로 다루어 졌었고...


다만 어느 때 부턴가 정치적 사회적 흐름 속에 우리의 문화가 예술을 관념적이고 추상적이고 심미적이여야 한다고 몰아간 측면이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한 거대한 문화적 억압속에서 대단히 거친 저항의식을 갖고 진지하지만 때론 아스트랄한 표현방식으로 무겁지도 않게 하지만 또 가벼이 보이지 않는 공연을 선 보인 이의경의 공연은 참으로 인상 깊었으며 몇가지 아쉬운 부분과 논쟁(?)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과감하고 도전적인 젊은 예술가를 새로 알게되어 매우 뜻 깊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미녀4명의 로제호임을 못 본 건 많이 아쉽지만... 저도 많은 생각을 하게되는 공연이었고 작가로서 저 스스로에게도 많은 물음과 도전과제를 던져주는 계기가 되지 않안나 싶어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의경님의 앞으로의 행보와 성장이 매우 기대되네요.


아무튼 한국에 이런 "문제적" 젋은 예술가들이 앞으로 더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필자도 앞으로 문제를 많이 일으켜 볼라니까 기대해 주세요~ㅎㅎ


추가로 관객과의 대화가 끝나고 나서 일종의 이벤트성 앙코르로 앨빈 루셔(A. Lucier)의 I'm sitting in the room 을 재연했는데요.. 원래는 테잎를 덮어쓰기로 재녹음하는 방식이 었던 것을 지금은 디지털 시대인 만큼 컴퓨터로 라이브 녹화하여 라이브로 덮어쓰는 방식으로 짧게 재연했는데 중간에 프로젝터가 나가서 안습..ㅠㅠ


이상으로 오늘의 리뷰를 마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 이와 긴글 읽으신 김에 아래 공감 버튼도 눌러 주세요~ 제발~!!



- 무직자 (Muzik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