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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에세이

고전음악과 전통음악

by Muzik者 2019. 6. 7.

얼마전에 아래와 같이 매우 흥미로운 칼럼을 읽게 되었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5292039005&code=990100&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_share

 

[문화와 삶]음악을 지칭하는 말들

세상에는 음악 장르를 지칭하는 수많은 이름이 있다. K팝, 트로트, 재즈, 국악, 인디, 힙합, 월드뮤직, 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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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와 개념은 우리의 사고방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대체로 공감하는 의견이고 비슷한 생각입니다.

다만, 고전과 전통의 카테고리가 다름은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 전통음악을 한국 고전음악으로 바꾸어 부르는 데에도 고려해야 할 어려운 부분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며칠 전에 해당칼럼을 읽고 평소 비슷한 방향에서 주장하던 바가 있어 관련 소감 글을 페북이나 블로그에 쓰려다가 시간이 없어 그만두었는데, 작곡가, 음악학자, 예술행정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 페친들께서 공유하셔서 타임라인에서 계속 보게 됨으로 여기에 소견을 남겨봅니다.

 

예를 들어 한국 고전소설이라는 분류는 익숙하고 그렇게 불리는 문학작품이 여럿 있지만, 한국 전통소설이라는 분류는 자주 듣지 못했고 어딘가 어색합니다. 반대로 전통설화는 익숙하지만 고전설화는 좀 어색합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전통음악하면 생각나는 음악이 많지만,  한국고전음악은 아직은 어색합니다. 왜 그럴까? 그동안 우리가 단순히 그런 분류를 해오지 않아서일까? 제 생각에 고전음악과 전통음악은 애초에 구분법이 다르기 때문이라 봅니다.

 

고전: [1] 예전에 쓰인 작품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변함없이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 [2] 어떤 분야의 초창기(草創期)에 나름대로의 완성도를 이룩해 후대에 전범(典範)으로 평가 받는 저작 또는 창작물. [3] (기본의미) 전통적인 사고(思考) 또는 그런 양식이나 기법에 입각한 것. - 다음 국어사전 -

 

아마도 소위 클래식음악(고전음악?)과 신예슬 선생님이 언급하신 한국고전음악’에서 고전은 사전적 정의 중 [3]번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문화적 양식이나 사고가 아닌 예술작품으로서의 고전 즉, 고전작품은 [1], [2]번의 의미로 쓰죠. 다시 말해 서양 클래식 음악은 유럽 고전예술(3번의 의미)로서 베토벤의 교향곡 같은 수많은 고전작품(1, 2번의 의미)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고전문화(/음악)를 형성하는 데에 고전(음악)작품이 존재하고 그 고전작품은 원작자의 이름과 원작으로서 원전이 남아 변함없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단지 연주자의 해석이 다를 뿐 원작은 불변하게 남아있죠.

 

그렇다면 무엇이 한국의 고전음악작품인가?’ 이 지점에서 한국전통음악을 한국고전음악이라 부르는데 조금 어색함이 생깁니다. 무악에서 파생된 시나위를 고전음악작품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어렵다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아시겠지만 시나위는 하나의 음악장르이거나 문화적 경향이지 원작자가 있는 작품이 아니니까요. 재즈장르에서 모던재즈와 구분해 올드재즈를 클래식재즈라고 부르듯 옛 방식의 시나위를 고전 시나위라 부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나위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나 가능한 것이고 고전음악이라는 대명제로 아우르며 고전작품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시나위에서 파생된 산조 등도 마찬가지죠.

 

산조장르 하위에서 최옥산류 가야금 산조나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를 고전산조라 부르는 것은 가능하겠으나 산조 자체를 고전작품으로 이야기할 수 없을 겁니다. 원작자와 원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야금 산조의 최옥산류성금연류란 예술작품의 원작자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올드재즈에서 동일한 가락을 베니 굿맨과 루이암스트롱이 어떻게 다르게 연주하는 가와 같은 즉흥연주의 기교성과 경향성의 차이일 뿐이니까요. (물론 산조 유파가 가락변형과 장단변형이 더 크긴 합니다.) 그래서 루이 암스르롱의 연주가 클래식재즈로 불릴지는 몰라도 그의 연주를 고전작품으로 취급하지는 않죠.

 

그렇다면 원작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궁중음악은 어떨까요. 국립국악원에서 궁중음악의 정수라 홍보하는 수제천은 고전이라 할 수 있을까요? 다음 세기에는 가능하겠으나 현시점에서는 이르다 생각합니다. 왜냐면 현행 수제천의 가락은 고악보에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20세기의 정비된 가락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고악보가 남아있는 영산회상은 고전작품일까요? 이 또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일단 현재 국립국악원을 비롯해 국내 연주단체 중에 고악보에 기록된 영산회상을 재연하는 곳은 없습니다. 현행의 연주되는 영산회상 가락 또한 전부 이왕직아악부 이후 20세기에 새로 정비된 가락입니다. 또한 영산회상 자체도 다른 원곡이 있는 파생곡이면서 동시에 다른 곡들로 파생발전 되었습니다. 현악영산회상(중광지곡), 평조회상(유초신지곡), 관악영산회상(표정만방지곡), 함녕지곡, 정상지곡(별곡) 등이죠.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오랜된 악보인 금합자보(1572)에 실린 가락인 보허자는 한국의 고전음악작품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이 또한 송나라 음악에서 전해진 가락이 변형되어 향악화 된 것이고, 이후에 양금신보(1610), 신증금보(1680), 대악후보(1759), 한금신보(18세기) 등에도 보허자가 수록되어 전해지지만 매 시기마다 가락이 조금씩 변형 발전되어 계승됨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14세기의 악보를 원전으로 여기며 원작을 고집해 연주한 것이 아니라 세월에 따라 변해갔으며 그에 따라 수많은 파생곡들 또한 낳습니다. 그래서 본디 성악곡이었던 것이 지금은 기악 파생곡이 더 많이 연주됩니다.

 

국립국악원 측은 연주자 전통에 의해 변형, 파생, 계승, 발전된 것이라는 입장이기에 고악보만을 고집해 재연하는 것은 전통에 부합하지 않는다 여깁니다. 음악에 대한 태도가 원전을 중시하는 서양음악 발전사와 비교해 보면 완전히 다른 미학이죠.

 

즉 우리의 궁중음악은 베토벤의 심포니처럼 과거에 한 개인에 의해 작곡되어 '작품'으로서 불변히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수세기에 걸쳐 여러 사람을 거쳐 계승 발전 변형되어가는 '계통'과 같은 것이죠. 즉 지금도 변하고 있고 앞으로도 변하며 여러계통으로 다른 파생곡을 만들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렇듯 유럽 클래식 음악처럼 직업적인 작곡가에 의해 작곡된 작품들과 비교해 음악 세계관과 미학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전통음악이라는 용어는 매우 합리적입니다.

 

전통: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과거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바람직한 사상이나 관습, 행동 따위가 계통을 이루어 현재까지 전해진 것. - 다음 국어사전 -

 

전통이란 단순히 과거의 산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부터 '계통'을 이루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즉 전통음악은 전통문화 안에서 계통을 이루며 계속 발전되고 변형되며 계승되어집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도 작곡가가 전해지지 않고 구전으로 전해진 자국의 민속음악(folk music)을 전통음악(Traditional music) 이라고도 부르죠. 이렇게 클래식음악과 전통음악은 문화적 계승 형태가 다릅니다.

 

, 서구의 작곡가 미학을 받아들인 개화 이후의 한국 작곡가에 의해 작곡된 음악작품들을 훗날 언젠가 부터는 한국고전음악작품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음악을 지칭하는 우리의 문화적 언어 습관에 대한 해당칼럼의 대체적인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관련하여 비슷한 취지에서 저도 오래동한 주장해온 주제가 하나 있어서 조만간 파생글을 하나 써 보아야 겠습니다.

 

-무직자(Muzik者)-

 

 

추가.

마침 다음에 쓰고자 하는 주제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논한 토론회가 있길레 취재기사를 공유합니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001&oid=003&aid=0009269176&fbclid=IwAR17jt9bz1jI4bTzV6HsVgtXBNb1erLO84hX2oIQCA4qHuXj-N9DV_ncFV4

 

국악, 이름부터 틀렸다···'우리 음악 정명 찾기' 태동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우리음악 정명(正名) 찾기’ 창립 토론회가 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렸다. 우리음악을 ‘국악’으로 통칭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 전제다. 이동식 문화칼럼니스트(전 KBS 정책기획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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