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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비평/창작과 비평

이은지 작곡발표회 "Aura Textus" 리뷰

by Muzik者 2019. 12. 26.

 

 

지난 12월 10일 화요일 이은지씨의 작곡발표회를 관람하였습니다. 저는 몇 년 전 문화예술전문지 ‘더무브’에 객원기자로 글을 쓸 때 그녀와 인터뷰를 한 인연이 있는데요... 2017년 (사)한국작곡가협회에서 주관하는 ‘파안생명나무 작곡가’에 그녀가 선정될 때 인터뷰 기사를 썼었답니다. 당시 그녀의 작품과 음악관에 대한 나눈 깊은 대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이은지 작곡발표회 포스터

작곡가 이은지님이 독일 유학을 마치고 국내 활동을 본격 시작하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때 자신의 음악과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용했던 중요한 키워드는 “메타포”(metaphor: 행동, 개념, 물체 등이 지닌 특성을 그것과는 다르거나 상관없는 말로 대체하여, 간접적이며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일)와 “은유”(비유법의 하나로, 행동, 개념, 물체 등을 그와 유사한 성질을 지닌 다른 말로 대체하는 일)이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당시 그녀의 작품에서 나타난 소리의 물리적 입체성과 심리적 다각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답니다.

 

이은지 작곡발표회 연주 프로그램

이번 2019년 개인 작곡발표회에서도 역시 중요한 키워드가 눈에 띄었는데요... 바로 “시간”과 “호흡”입니다. 얼핏 연주회의 메인 타이틀로 쓰인 “텍스트” (Textus)가 주제인 것 같지만 텍스트는 주제를 부각하고 언급해주는 매개체라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이 키워드들을 바탕으로 새 작품을 포함해 2012년 이후의 작품들이 연주되었지요.

 

1부에서는 각각 “O...scil..la.re” (진동하다, 요동치다의 라틴어 단어를 네음절로 분철하여 진동하는 상태를 글자 형태로 은유한 듯 보이네요...ㅎㅎ), “네 눈의 곡선이...” (La courbe de tes yeux...), “세레나데”(Serenade), “시간 조각”(Sculptura Tempus, 초연작품)이 연주되었는데, 특별히 2014년 작곡한 실내악 작품 “시간의 향기”(Duft der Zeit)라는 곡이 다른 작품들 사이사이마다 발췌되어 연출처럼 쓰이면서 콘서트 전체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묶입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이 콘서트의 전체의 주제적 아우라(Aura)를 이끄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의 향기가 부분(3개의 악장) 연주되었고요. 이 작품은 현병철의 동명의 에세이집에서 발췌한 텍스트를 바탕으로 작곡한 것으로 시간을 주제로 다양한 심상(心想)이 담겨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1부에서 시작과 작품들 사이사이 “시간의 향기”의 각 악장이 부분발췌 되어 프렐류드와 간주곡 같이 연출되어 쓰였는데 각각 ‘휩쓸려가는 시간’, ‘문턱’, ‘하늘에서의 시간’, ‘시간의 수정’, ‘머문다는 것은’ 등의 제목의 글이 쓰였고 이 문장들이 프로그램 책자에도 담겨있었어요. 그러나 필자는 연주회 관람 중에 해당 글을 거의 읽지 않았답니다. 일단 전자음과 내레이션이 펼쳐질 동안 연출로서 무대와 객석 전체를 어둡게 하여 글을 읽을 수도 없었거니와 공연 중에 읽기가 자칫 내레이션과 전자음을 통해 은유적으로 재해석된 소리와 어두운 공간의 아우라(Aura)를 감상하는 데 방해할 것 같았기 때문에요.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을 꼽으라면 “세레나데”(Serenade for soprano, prepared piano and small instruments, 2018)와 “시간 조각“ (Sculptura Tempus for violin, cello and prepared piano. 2019)이었습니다. 반면에 아쉬움이 있던 곡은 색소폰 독주인 “O...scil..la.re”고요. 현대음악의 기교적인 독주곡에서 나오는 모든 주법이 총망라되어 나온듯하여 음악적 제스처(Gesture)를 통한 주제적 표현이 효율적이지 않았다는 생각이에요. 대체로 정제된 다른 곡들과 달리 좀 과시적이고 과장적이라는 느낌도 들었고요.

 

”세레나데“는 소프라노에서 잦은 반음과 삼온음(Tritone)이 특징인 근현대 무조음악적인 선율이 쓰여 선율감상에서는 특별한 인상이 없었지만, 그것을 감싸는 악기들의 다양한 음향적 효과가 특별한 인상을 줍니다. 현대의 많은 실내악 형태의 성악곡에서는 인성을 기악화하여 음색적인 조화를 이루는 시도를 많이 하는데, 이 곡은 ‘세레나데’라는 전통적인 제목을 쓰고 있듯이 악기군을 성악(소프라노)과 구분하여 전통적인 독창과 반주의 형태로 썼지만, 성악과 기악의 음악의 장르적 형태가 달라 둘의 조합에서 입체적인 묘한 하모니를 느끼게 해주더라고요.

 

이날 초연된 ”시간조각“은 작곡가가 내밀한 ‘호흡’에 대해 더 고민한 작품답게 매우 몰입도가 높았습니다. 고음의 스타카토로부터 진전된 아르페지오, 몰아치는 율동의 고조 후 이어지는 작은 소리와 지속적인 음들, 극도로 절제된 음색 제스처의 결합이 매우 맥락적이어서 곡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 것 같은 영속적인 아우라를 형성하며 끝을 맺는 느낌 입니다.

 

또한, 작곡 작품에 대한 연주해석이 돋보였던 곡은 2부에 연주된 “시간의 향기”인데요. 연주자들의 디테일하고 정제된 호흡이 깊어서 감상의 몰입도가 매우 높았어요.

 

제가 그동안 들었던 이은지씨의 작품들은 대체로 기교적이고 화려하며 입체적인 곡들이었는데 이날 들었던 곡들은 대부분 그 화려함과 기교들을 절제하여 좀 더 내밀한 호흡 안에서 은유하고 사유하는 작품들이어서 다른 면모를 느껴 볼 수 있었어요. 이는 그녀의 다음의 작품 활동이 기대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이은지 작곡발표회 프로그램

이글은 서울문화재단에 제출된 제 글을 경어체로 고쳐 옮긴 것입니다. 유익하셨다면 아래 공감버튼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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