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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비평/창작과 비평

2014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III 강연 & 연주회 리뷰 2부

by Muzik者 2014. 12. 27.

그동안 연말이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만남과 약속들이 많고 하다보니 글쓰는데 할애할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해 <2014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III> 에 대한 리뷰 2부를 이제야 쓰네요.. 구독자가 별로 없는 듣보잡 블로그이기는 하나 혹시나 다음 포스팅을 기다렸을 구독자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그럼 리뷰 이어갑니다


이 글은 실내악 작곡제전 III 리뷰 1부(링크)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Entalphie (엔탈피)

강동규 작곡 (2013년) (창악회 추천)

목관4중주 (플룻 오병철, 오보에 박지현, 클라리넷 이은숙, 바순 정승)



'엔탈피'란 열역학 함수의 일종으로 어떤 물질이 일정한 압력 하에서 생성되는 동안, 그 물질 속에서 축적된 열함량, 즉 에너지를 의지한다. 이 작품에서는 주제 음렬을 통해 파생되는 모든 종류의 분자결합을 이끌어 내는 음악적 에너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작품에서 엔탈피는 음 하나하나를 결합시켜 다양한 구조를 만드는가 하면 만들어진 구조를 분해시켜 자유로운 분자의 움직임을 구성하는 일종의 전우주적 절대진리를 의미한다.

호모리드믹한 총주는 결합구조를, 자유롭게 서로 대응하는 대위구조는 분회된 분자들의 움직임을 나타낸다. 기존의 목관5중주에서 약간 무겁고 풍부한 사운드의 호른을 빼고 날카롭고 반응속도가 빠른 4개의 순수 목관악기만 사용했고 짧은 서주를 거쳐 분해와 결합이 반복되는 에피소드가 이어져 결정적인 분자합성의 클라이막스에 도달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있다.


1부와 마찮가지로 황갈의 글은 작곡가가 직접 쓴 간략한 해설로 프로그램지(紙)에 있는 글을 옮긴 것입니다.


처음 이 해설을 읽고 들었던 생각은...... 열역학 함수? 열함량? 분자결합? 분자합성?.....뭐지?! 이 '공대 오빠스러움'은??? 였습니다. 정말 무슨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ㅎㅎ 작가는 나름 친절하고 쉽게 해설하신다고 쓰신 글이지만, 카이스트 학생의 '쉽고 재미있는' "엑스포다리 철근이 왜 안끊어질까?"라는 이야기나 "엘사의 장갑이 얼지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간호사 썸녀와의 소개팅(링크)을 망쳤듯이... 이날 관객 대다수는 이 해설을 보고 분명 @_@?? 이런 상태이지 않았을까 싶군요...


여담 하나만 풀자면.. 작곡가들을 만나다 보면 여성 작곡가들 중에선 이런 타입을 거의 본적이 없는데... 남성 작곡가들 중엔 물리학이나 수학, 또는 기계 및 소리(음향)공학 등에 밝아 그런 원리들을 음악적 아이디어로 활용하시는 작곡가 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요... 그분들과 음악이나 각자의 작품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같은 '음악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알수없는 말들로 인해 대화가 어려워지더라고요..ㅋㅋㅋ 양자역학이 어쩌구... 피보나치(Fibonacci)의 수열(數列)이 저쩌구... 음정단위의 무리수(無理數)가 어쩌구저쩌구......아아~~악@_@???


각설(却說)하고, 음악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잘 이해는 안되지만 작품설명에 의하자면 '주제 음렬'이 어떻게 다양한 형태로 파생되고 또 개개의 음이 어떻게 결합되는가를 추적하며 들어야 작가에 의도에 부합될 듯 해서.. 그리 들으려 했으나 일단 '주제음렬'에 대한 정보부터 없기에 쉽지는 않더군요.. 그래서 차선책으로 음향적(?) 울림의 특징, 음과 선율의 구조적 흐름, 그리고 형식을 캐치하며 들으려 했지요.


제 이해나 해석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초반과 중구난방한 와중에서도 간혹 정돈하여 들리는 특정 화음(?또는 음향)이 '주제음렬'로 쌓은 듯한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로부터 선율적 움직임을 파생하는 과정에서 스케일적 움직임을 너무 남용하지는 않았는가 싶습니다. 분자의 결합? 정도로 유추되는 중반부 화음과 유니즌으로 움직이는 빠른 페시지 등은 음색적으로 재미있지만, 그 이외의 개개의 분자구조들이 표현된것으로 생각되는 중구난방한 움직임에서는 상대적으로 악기의 주법활용(Instumentation)이 다양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네요. 각 악기의 특성을 살린 개성적인 연주법들을 잘 활용했다면 각각의 분자구조의 독립적 소리는 더더욱 또렷히 분해되어 들릴테니까요.


음악적 모티브로 삼은 주제 자체가 어려운 만큼 음악도 난해하고... 소재에 대한 어떠한 편견에서 오는 인상(印象)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수학적이고 기계적적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별점. ★★★ (3)



상념(像念)

고태암 (2013년 / 개작초연) (ISCM 추천)

현악4중주 (바이올린1 김수연, 바이올린2 김수진, 비올라 박수연, 첼로 오승규)



농현 기법의 움직임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한국 전통음악의 연주기법으로서 농현이란 여러 가지 전문적인 용어로 말할 수 있지만, 간략한 이미지를 설명한자면 음을 흔들어 물결과 같은 파동을 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음악의 Vibration의 느낌과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다.

농현의 움직임을 확대셩으로 본다고 상상한다면, 수많은 Mikroton(미분음) 움직이는 과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움직임의 여러가지 패러미터를 가지고 작곡을 하였다. 서로 각각 악기들이 같은 방향의 움직임, 정반대(Inversion) 방향의 움직임, 자유스러운 방향의 움직임으로 3가지 움직임이 있다. 본래 음악은 멜로디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멜로디가 없다. 다만 한국어로는 음악적인 운동성이 있는 선, 영어로는 Musical Moving Line 혹은 Musical Moving Frame 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러한 이유가 농현이 Vibration과 다른 것이다.

나는 작품 '상념 (像念)'에서 Melody가 없이 Musical Moving Line이 시간적 흐름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음색의 운동성을 형상화한 이미지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저도 한자교육세대가 아니라 한자는 잘 모릅니다만... 상념의 상을 "想"(생각하다. 상)이 아니라 "像"(형상 상)으로 표기해서 조금 의아했네요. 단순한 오기(誤記)인 것인지 아니면 의도한 단어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작곡가가 쓰신 한자대로라면 제목은 '마음속에 떠오르는 여러가지 생각'이라는 의미의 상념(想念)이 아니라 '형상을 생각'하는 것이 되는데요... 작곡자 본인의 해설에 따르면 '이미지를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하니 의도적으로 변용(變用)한 듯 합니다.


또 해설 중간에 그 의도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정확한 의미를 우리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영어를 '음악의 동적인 선/틀'과 같은 번역없이 그대로 쓰신듯 하나 '멜로디' 정도는 우리말 외래어 표기법 대로 쓰는 게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Mikroton은 독일어 표기로 썼는데 국내 관객이 독일어 보다 영어에 친숙함을 고려한다면 Microtone으로 표기하되, '미분음(Microtone)'으로 외래어 표기법에 근거한 우리말 우선원칙을 지켜 써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국내 예술인들 중 클래식 음악계 같이 해외 유학파가 주류를 이루는 그룹들은 외래어를 별 다른 번역이나 한국어 표기없이 원어 그래도 작품해설에 남용하는 경우가 흔한데요... 별로 바람직스럽지 않습니다.


이분과는 개인적인 친분이 좀 있고 서로 알고 지낸지는 오래되었지만, 각자의 음악을 들어볼 기회는 거의 없었기에 최근 작품인 이곡에 대해 기대를 많이 하고 들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고태암님의 이미지는 매우 차분하고 신중하며 신사적인 매너가 있는 사람인데.. 지휘하시는 모습은 자세가 좀 어정쩡한게 반전이라 살짝 코믹하네요..ㅋㅋ 사실 제가 리뷰글을 쓴다고 하니 본인으로 부터 지휘에 대해선 언급하지 말아달라는 은근한 청탁(?)을 받았지만 영상을 링크한 마당에 어찌 언급을 안 할 수가...ㅎㅎ 어쨌든 그날 객석에서 연주와 고태암님의 다이나믹한(?) 엉덩이 잘 감상했습니다.ㅋ


쓸데 있는(!) 사설이 좀 길었네요..ㅎㅎ 본론에 돌아와 '농현'이 이곡의 키워드 인듯 한데요. 이 농현에 대한 작곡자의 설명이 충분치 않아 위해 부연 설명을 달자면..."농현"(링크)이란 '노는 현' 또는 '현/음을 가지고 논다'는 뜻으로 '음을 흔들어 물결과 같은 파동을 얻는 것' 뿐 아니라 음을 꺽거나 미끄러지듯 끌어 내리고 밀어 올리는 것 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임과 동시에 '현악기'에 국한한 용어로 '연주 기법적' 의미가 강합니다. 비슷한 의미이지만 현악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음을 흔들고, 꺽고, 미끌어 올리고 내리는 등의 포괄적 기교부림을 일컫는 일반 음악용어로는 "시김" 또는 "시김새"(링크)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음악(국악)의 전통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 시김과 농현은 현대를 사는 작곡가들에게도 흥미에 대상이기에 많은 한국 작곡가들이 전통적 방식 그대로 쓰거나 독창적으로 재해석하여 활용하고 있는데요... 이 곡도 그러한 '재해석'이라는 연장선상에서 다른 작곡가들의 그것과 비교하여 감상한다면 한층 재미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곡이 제법 난이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현악4중임에도 지휘가 필요한 것이지요. 만약 이 곡을 연주한 현악4중주가 오래 합주를 해온 고정된 현악4중주단이고 이 곡에 대한 연습기간이 충분히 확보 될 수 있었다면 굳이 지휘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대음악의 연주회... 더 나아가 협회주관의 연주회는 프로젝트 성격이 강하고 각 악곡마다 악기 편성이 판이하여 고정된 악단과는 작업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매번 연주자 섭외가 쉽지않은데다가.. 그때 그때 섭외하여 연주하는 것이 현실이기에 대체적으로 연주준비 시간이 짧아 완성도 높은 연주를 감상하기가 어려운 구조이지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연주인데요... 그래도 비교적 들을 만한 연주입니다.


이런 종류의 곡은 악보상에 기보된 음이 많지 않아 곡의 난이도가 어려워 보이지 않으나, 실제로는  같은 음도 다양한 보잉과 주법으로 다르게 연주될 것이 지시되어 각각의 음색을 차별성 있게 연주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집중과 음악적 흐름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쉬워보이는 악보와 달리 연주하기 까다로운 곡이지요.


지휘를 보며 연주해서 그런지 전체적인 합(合)은 비교적 잘 맞으며 음색적 조화도 잘 섞여들어가는 편입니다. 다만 각자의 디테일에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예컨데 글리산도(glissando. 음을 미끄러지듯 올리거나 내리는 주법)의 속도와 다이내믹의 정도, 그리고 비브라토(Vibrato. 음을 흔들거나 떠는 것)의 진폭의 조절이 많이 아쉽습니다.


작품 자체의 음악적 전개에서는 몇가지 주법들이 너무 반복되듯 남용되는 측면이 강해서 중반 이후로는 형식적으로 완전히 다른 선율이나 구조가 전개되어도 별 집중없이 들으면 고놈이 고놈인양 들릴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연주 완성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초반의 음색적 분위기가 참 좋은데요.. 그 초반 분위기를 좀더 가져갔으면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도 있습니다.


별점. ★★★☆ (3.5) 지인이라도 무직자의 별점은 박함...ㅎㅎ



Still II

이경미 (2012년 / 개작초연) (미래악회 추천)

현대음악 앙상블 Eclat

(플룻 정수안, 클라리넷 김은경, 첼로 강미사, 콘트라베이스 이재준, 타악기 윤재현, 피아노 문정재, 지휘 김진수)



단어 'Still'이 갖고 있는 많은 의미들은 나에게 위로와 희망을 준다. 형용사로서 '고요한', '정지한' 의미들은 내게 위안과 평화를, 그리고 부사로서의 '아직(계속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의미들은 아직도 계속되어야 할 나의 꿈들에 대한 희망을 준다. 또한 명사로서의 '영화의 한 장면을 담은 사진' 이란 의미는 나의 상상력을 자극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Still' 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나는 여러 상황을 담은 내 주변의 장면들을 소리로서 표현해 보았다.


이 곡이 "Still" 이라는 원어의 단어가 갖는 고유한 느낌을 포기할 수 없어 번역을 하지않고 그대로 표기한 것은 이해하겠으나 위의 강동규님 처럼 'Still(스틸)' 이라 표기하는 게 더 좋겠습니다. 더 바람직한 방법은 표준 외래어 표기법을 따라 '스틸(Still)' 이라 하는 것이 좋구요. 강동규님도 마찮가지... 매 연주회 때마다 느끼는 것이고 특히 협회나 동인의 연주회에서 항상 느끼는 것인데... 프로그램지(紙)를 쓰는 사람들이 제발 외래어 표기법을 준수하고 또 편성이나 외국어 표기를 통일해 썻으면 좋겠네요.


클래식 음악계가 독일 유학파와 미국유학파로 양분되어 있다보니 누구는 편성을 독일어로 누구는 영어로, 누구는 한국어로 제가각 표기하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본 공연의 프로그램도 보면 송향숙, 남진, 강동규, 고태암 박영희는 악기편성을 각각 소프라노, 피아노, 기타8중주, 목관4중주, 현악4중주, 다섯악기 등과 같이 한국어로 표기한 반면, 이영지, 이경미는 for flute, clarinet... 등과 같이 영어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지(紙)를 제작한 사람이 별 생각없이 작곡가가 적어준 제목을 그대로 붙여넣기(Ctrl.+V)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관객들이 연주회 보러 가려면 3개국어(한국어, 영어, 독일어)를 구사 해야하는 건가요?... 제발이지 이런것도 잘 생각하고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소하다 치부할 수도 있지만 관객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자 예의에요!!!


또 사설(辭說)이 길어졌는데요..ㅎㅎ 다시 음악으로 돌아와서...... 개인적으로 이러한 '종합편성'의 실내악을 좋아합니다. 대규모 편성이 아니더라도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피아노 등 골고루 짜여져서 각 악기가 갖는 고유 음색간의 다양한 조화와 대비를 이루는 실내악곡을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이 곡의 편성만으로도 일단 별점 1개 먹고 들어갑니다.ㅎㅎ 한가지 아쉬운건 금관이 없네요. 금관악기도 하나 쯤(예를 들어 호른 또는 트럼본) 들어갔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실내악에서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악기가 들어간 편성을 좋아하는 이유는 같은 작곡가로서 다양한 음색을 어우르는 어려움을 알기 때문입니다. 현악4중주 같이 동일족의 악기의 편성은 각 악기의 음색이 비슷해 다채로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데 약간의 한계가 있는 단점이 있는 반면 음향을 섞는데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곡 처럼 다양한 악기군을 한데 어울어 놓은 실내악 편성은 다채로운 표현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지는 이점 만큼 어려움도 많습니다. 오케스트라 처럼 악기수가 많지 않아 폭발적인 사운드나 떼로 뭉뜽그려 내는 음향은 낼수 없고, 오케스트라의 비해 개개의 악기의 고유한 특성을 세세히 살리면서도 오케스트라와 같은 음색적 조화도 이루어야 하기에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 악기주법 활용(Instrumentation)에 대한 높은 지식과 상당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능력은 오늘날 일명 '현대음악'을 작곡하는 작곡가가 반드시 갖추어야할 기본 소양이자 능력입니다만... 개개인의 능력차는 있기마련이니 저를 포함한 작곡가들 중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관현악법이나 악기법(Instrumentaion)이 뛰어난 작곡가를 보게 되면 언제나 기모찌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저도 언젠가 그랜드라인의 바다로 나가 '악기악기' 열매라도 먹어야 '능력자'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ㅠㅠ


또 이야기가 새네요..(죄송)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처음 프로그램에서 이곡의 편성만 보고도 기대감을 갖고 있었죠. 하지만 기대치에 비해 주목할 만한 음향이나 음색적 대비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앙상블의 연주가 그다지 훌륭하지 않고요. 작곡자의 음악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연주가 너무 맛깔나지 않습니다. 무덤덤하게 악보와 지휘만 쫓아갈 뿐 정말 음악에 대한 "표현"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디테일을 별로 잘 살리지도 못했고 선율페시지는 너무 평탄하고 재미없게 연주합니다. '악보대로'만 연주하려는 양 앙상블로 부터 별 특별한 '음악성'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현대음악의 연주가 이런저런 제약으로  준비의 어려움이 있지만... 이 앙상블은 본 공연을 위해 급조된 것이 아닌 기존에 활동하던 앙상블임에도 이정도 사운드 밖에 들려주지 못한다는 것에 실망감이 매우 큽니다. 따라서 이경미님의 곡이 제대로 표현되었다 보기 어렵기에 같은 작곡가로서 아쉬움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그러한 표현의 '부재'를 감안하고 듣는 이경미님의 곡에서 느끼는 것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반어법'입니다. 곡의 제목이 의미하는 '고요'나 '정지'보다는 뭔가 부산스러움과 더불어 깨알같은 화려함이 뭍어나니까요.. 물론 연주가 제대로 되었다는 가정하에서 말이죠.. 제목이 갖는 의미에 너무 매몰되 감상하면 자칫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제목의 의미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개개의 깨알같은 소리들의 조합을 주의 깊게 감상한다면 충분히 흥미가 가는 곡 입니다. 단, 연주가 제대로 되어야 하겠죠. 기회가 되면 제대로 된 훨씬 수준 높은 연주로 다시 듣고 싶네요.


별점. ★★★☆ (3.5) (작곡작품과 별개로 앙상블의 연주가 그저 그래서 별 반개 깎음!)



Lebensbaum (생명나무) I

박영희 (초청작품) (초연(初演))

(트럼펫 남관모, 트럼본 손인호, 첼로 송민제, 피아노 이상욱, 타악기 최성철 지휘 박광서)



"나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은 곧 "나는 누구인가"로 연결된다. '네가 작곡하는 음악은 어디서 유래하며 그 근본 출처는 어디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가끔씩 받는다. 그 대답을 먼저 나 자신에게 하려 한다. 곡 제목을 "생명나무"로 하여 몇 편의 곡을 더 완성할 예정이다. 생명나무에 대한 깊은 뜻은 우리의 옛날 신령님이 사시는 나무가 있고, 보리수 아래에서 정진하시어 큰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도 있고,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나오는 생명의 나무 가르침도 있다. 그 첫 번째 곡으로 다음의 악기 편성을 택하였다. 트럼펫, 트럼본, 타악기 피아노 그리고 첼로. 이들 다섯 악기들은 서로 수평으로 어우러지고, 또 음의 근본 출처를 제시하면서 수직으로 함께 모여 "생명의 존엄"을 노래한다.


이 번역된 듯한 부자연스러운 텍스트는 뭐지?!


이날 공연의 마지막 연주는 재(在)독일 작곡가 박영희님의 곡으로 이 작품은 작곡협회 산하단체의 추천이 아닌 협회의 직접 위촉에 의한 초청작품으로 이날 연주가 초연이랍니다.


박영희님과는 친분까지는 아니여도 개인적인 인연이 좀 있는데요... 유학시절 동경하고 존경하던 분의 음악을 한국에서 듣게 되니 기대가 많이 되었죠. 박영희님이 유럽에서 다양한 활동으로 주목받던 것과 달리 모국인 한국내에서는 2000년대 전까지도 작품이 소개되거나 연주되는 일이 거의 없었거든요. 이날 연주회 며칠 전에 이 분의 음악만을 연주한 초청연주회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못가서 더 기대를 하고 듣게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연주가 이만저만 거슬리는게 아니네요. 특히 객석에서 눈을 찌푸리게 만든 건 타악기 톰톰(Tom-tom)입니다. 영상과 달리 현장에서 들리는 소리는 너무 도드라지고 잔향이 많아 앙상블적으로 음색이 섞이지 않고 혼자 튑니다. 이러한 현상이 생긴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유추할 수 있는데요. 하나는 타악기 연주자가 채를 잘못 택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톰톰의 사이즈를 잘못 택했거나 조율을 잘못 한것입니다. 앙상블에서 타악기 연주자는 다른악기와의 음색적 조화를 위해 리허설 과정에서 반드시 최적의 조합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저런 채를 다 써보고 다양한 싸이즈의 악기를 가져다 테스트 해 보아야지요. 타악기의 특성상 같은 악기도 어떤 채로 치느냐에 따라 음색이 바뀌고 울림통의 크기에 따라 음색은 물론 잔향과 세기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최적의 조합을 찾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지휘자나 타악기 연주자는 음색에 대한 예민한 귀와 다른 악기와 조화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고요.


작곡자가 함께 테스트하며 요구할 수 도 있지만 이날 작곡가는 오지 않았기에 작곡가 부재시 연주에서 지휘자나 연주자의 역량은 이런 부분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 연주는 이 과정이 매우 미흡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타악기(나무블록?, 목탁?)의 연주에서도 타악기의 소리가 너무 도드라 집니다. 채를 잘못 택했거나 악기의 세팅 단계에서 최적의 악기를 찾아서 한게 아니라 그 종류의 악기중 그냥 공수할 수 있는 거 아무거나 가져다 쓴 결과지요. 톰톰도 종류가 수십가지고 사이즈만도 다양하게 있습니다. 채도 재료와 사이즈 모델에 따라 천차 만별이지요. 작곡가가 피아노 모델을 지정하지 않듯이 타악기에 사이즈나 모델을 지정하지 않습니다. 채에 대해서도 나무채냐, 말렛이냐 등만 지정할 뿐 세세한 모델과 사이즈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악곡에 적합한 최적의 악기와 채를 찾는 건 일차적으로 타악기 연주자의 몫입니다. 그래서 리허설 과정에 이러한 작업이 필요한 것이고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것 또한 타악기 연주자의 능력과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과거 필자도 요하네스 피셔(Johannes Fischer: 독일의 타악기 연주자, 작곡가)와의 협업과정이나 마이클 란타(Michael Ranta: 미국의 타악기 연주자, 작곡가)의 깨알같이 꼼꼼하고 세세한 리허설을 참관하면서 이러한 과정이 타악기 편성이 포함된 연주에서 얼마나 중요한치 새삼 배웠습니다. 그러나 위의 연주는 이러한 점이 매우 미흡했다는 것이 첫 울림부터 느껴집니다. 영상에서는 그나마 그 도드라짐이 덜 해서 그렇지 현장에서 들었던 연주는 앙상블이라 하기엔 매우 거슬렸죠.


그리고 앙상블 전체적으로도 수준높은 연주를 들려주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소위(所謂) '현대음악'에 대한 공부나 이해는 물론 경험이 매우 부족한 연주자라는 것이 단번에 느껴집니다. 제 아무리 훌륭한 클래식 연주자라도 현대음악에 대한 이해나 경험이 부족한 연주자들의 연주는 딱 들어도 티가 납니다. 말그대로 아마추어 냄새가 너무 나요. 그래서 프로그램지의 연주자 프로필을 확인해보니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재학생들이네요..!! 


허허.. 아니.. 제대로 연주도 못할 걸 뭐하러 국제적인 명성의 작곡가에게 작품을 위촉했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작품을 위촉하여 초청해놓고 연주를 이렇게 준비하는 건 예의가 아니죠.. 저 또한 작곡가로서 제 곡이 만약 이런식으로 연주된다면 매우 속상할 것 같군요. 아무리 초연이라 처음 듣는 음악이라도 연주의 수준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건 정말 돈내고 들을 만한 수준의 것이 아니에요. 즉, 한 유명 작곡가 작품의 한번 뿐인 초연을 망친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망친 연주를 가지고 음악작품 자체에 대해 따로 무어라 언급할 수가 없네요. 박영희님이 이날 오시지 않으신게 천만 다행이다 싶을 정도 입니다.



실내악 작곡제전 III 총평


이것으로 이날(12월2일)의 공연이 모두 끝이 났는데요.... 먼저 이날 협회에서 연주회 시작전에 관객들에게 투표지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유는 연주회가 모두 끝나고 이날의 곡을 선정하는 투표를 하기 위해서랍니다. 위촉 작품인 박영희님의 작품은 후보에서 제외 되었는대요.. 진행된 투표에서 선정된 작곡가는 내년에 협회 주관의 연주회에서 다시 연주되고 새 작품을 위촉받는다네요. 일반관객은 녹색, 동료 작곡가 및 협회 임원은 하늘색, 기타 원로라 불리지만 꼰대라 뒷담화 까이는 작곡가들은 다른색(빨강? 기억이 안남)으로 구분되어 배점이 다른 투표지를 받았는데요.. 하늘색 투표지를 받은 저는... 보다 수준 높은 연주로 다시 듣고 싶은 마음에 "Still"의 이경미님에게 한표 주었습니다.


별점을 기준으로 하자면 1부 리뷰에서 소개한 이영지 님의 '다운로드'를 추천해야하지만... 그렇지 못한데는 속사정이 있어서......ㅎㅎㅎ 이유는 리뷰 1부(링크) 참고하세용~!ㅋ


이상으로 12월 2일 있었던 "2014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III"에 대한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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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제전 IV 에대한 리뷰도 금방 올릴게요 구독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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